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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이라는 이름을 두 번 가진 사람이 "신은 없다"고 가르쳤어요.
산스크리트어로 이슈바라(Īśvara)는 '주(主)', 즉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이에요.
크리슈나(Kṛṣṇa)는 힌두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의 이름이고요.
합치면 '신들의 주인'쯤 되는 이름, 그게 바로 이슈바라크리슈나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체계화한 철학이 상키야(Sāṃkhya)예요.
상키야는 인도의 6대 정통 철학 학파 중 하나로, 가장 오래된 사상 체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상키야의 핵심 주장이 바로 이거예요.
"창조신 이슈바라의 존재는 논증되지 않는다."
자기 이름 안에 신을 두 번이나 넣은 사람이, 신 없는 철학의 정전(正典)을 썼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름이 '박목사'인 사람이 "신은 증명되지 않는다"는 철학서를 써서 신학대학교 필독서가 된 상황이에요.
아이러니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그가 남긴 책은 시 72수가 전부였어요.
책 이름은 상키야 카리카(Sāṃkhya-Kārikā)입니다.
'상키야의 송가', 즉 상키야 철학을 시로 읊은 책이에요.
그 시가 딱 72수인데, 각 시는 4행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수백 년 된 학파의 사상 전체가 72개의 4행시 안에 들어간 거예요.
한 학기짜리 철학 전공 강의를, 트위터 글 72개에 압축한 것과 같아요.
그리고 이 얇은 책이 결국 상키야의 결정판 텍스트가 됐어요.
수천 년 전통을 담은 수많은 텍스트를 제치고, 이 72수짜리 시집이 상키야의 정전으로 자리 잡았어요.
후대 학자들은 상키야를 공부할 때 이 책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뭘 버릴지 알아야 뭘 남길지 보여요.

그의 우주에는 창조주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어요.
상키야 카리카는 우주 전체를 딱 두 가지 원리로 설명해요.
푸루샤(Puruṣa)는 순수한 의식,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자아예요.
프라크리티(Prakṛti)는 물질과 자연, 즉 변화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고요.
비유하면 영화관이에요.
스크린이 프라크리티고, 관객이 푸루샤예요.
스크린 위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고, 관객은 그걸 의식으로 경험하는 거예요.
그 위에서 영화를 기획한 신은 없어요.
스크린은 스스로 돌아가요.
그럼에도 상키야는 인도 정통 6학파 중 하나로 정식 인정을 받았어요.
인도에서 '정통'이란 힌두교 근본 경전인 베다(Veda)의 권위를 인정하는 학파를 뜻해요.
상키야는 베다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창조신은 거부했어요.
종교 종단이 공식 교리집에 "신은 증명되지 않는다"고 적은 셈이에요.
아주 좁은 선을 걷는 사상이었죠.

그의 책은 산맥과 바다를 건넜고, 그는 자기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상키야 카리카는 6세기에 인도 출신 승려 파라마르타(Paramārtha, 진제眞諦)가 한문으로 번역했어요.
파라마르타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불교 경전을 번역한 고승이에요.
그의 손을 거쳐 상키야 카리카는 금칠십론(金七十論)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불교계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정작 저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디서 배웠는지.
학자들은 4~5세기 인물로만 추정할 뿐이에요.
한국에서 시작해 미국 대학 필독서가 된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정작 한국 어느 동네 출신인지조차 기록이 없는 상황과 같아요.
책은 히말라야를 넘고 중국 땅에 뿌리를 내렸는데, 책을 쓴 사람은 그 이름 하나만 남긴 채 사라졌어요.
이름 속에 신을 두 번 넣은 사람이, 신보다도 더 조용히 역사 밖으로 걸어나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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