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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는 집이 없어서 통 속에 산 게 아니에요.
집을 스스로 버리고 통을 선택한 거예요.
부유한 환전상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 재산을 다 내려놓고 도자기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어요.
강남역 한복판에 김장독을 가져다 놓고 그 안에서 자는 사람을 상상해봐요.
출근 인파를 향해 "당신들이 잘못 살고 있어!"라고 외치는 거예요.
디오게네스가 정확히 그랬어요.
그가 산 곳은 아고라, 아테네 도시 한복판의 광장이에요.
오늘날의 광화문 광장처럼 상인과 정치인과 시민이 뒤섞이는 가장 번화한 곳이에요.
거기에 피토스라는 사람 키만 한 대형 도자기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서 잠을 잤어요.
전 재산이라곤 옷 한 벌, 지팡이 하나, 자루 하나뿐이었어요.
그게 오히려 자유라고 그는 말했어요.

환한 대낮이었어요.
그는 불 켜진 등잔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어요.
광장에는 수천 명이 오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등불을 높이 들고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들여다봤어요.
지나가던 시민들이 물었어요. "도대체 뭘 찾고 있소?"
디오게네스가 답했어요.
"사람을 찾고 있소."
그가 찾던 건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었어요.
수천 명이 가득한 광장 안에서, 그가 보기에 진짜 인간은 없었던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SNS 팔로워가 수만 명이어도 "진짜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숫자와 실질적인 연결은 다르니까요.
그 행동에는 날카로운 풍자가 숨어 있어요.
대낮에 등불이 필요하다는 건, 주변이 너무 어둡다는 뜻이거든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기준엔 아무도 없다는 선언이에요.

세계를 절반쯤 정복한 청년 왕이 거지 앞에 섰어요.
거지는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말했어요.
기원전 336년 무렵,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코린토스에 왔어요.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자 그리스 전역과 페르시아 제국까지 정복한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진 군사 지도자예요.
그 알렉산드로스가 친히 디오게네스를 찾아간 거예요.
왕이 통 앞에 섰어요.
"무엇이든 원하는 걸 말하라. 들어주겠다."
대기업 회장이 직접 찾아와 "원하는 자리 다 만들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누구라도 긴장하고 뭔가를 요청할 순간이에요.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통 안에 누운 채 햇볕을 쬐고 있었어요.
그가 말했어요.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그것 말고는 필요한 게 없소."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들은 그 무례함에 어이없어했어요.
그런데 알렉산드로스 본인은 이렇게 말했대요.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디오게네스이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정복자도 결국 알아봤어요.

노예 경매대 위에 묶인 노인이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자기를 살 사람을 자기가 골랐어요.
항해 중 해적에게 붙잡힌 디오게네스는 크레타 섬의 노예시장에 매물로 올라갔어요.
경매인이 물었어요. "이 자는 무슨 일을 할 줄 아오?"
보통 노예라면 요리를 할 줄 안다, 글을 읽을 줄 안다, 뭔가 쓸모를 증명하겠죠.
디오게네스는 달랐어요.
"사람을 다스릴 줄 아오. 그러니 주인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를 파시오."
면접 보러 가서 "제가 면접관 자리가 더 어울립니다"라고 말하는 격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그게 통해버렸어요.
군중 속에서 크세니아데스라는 코린토스의 부자 귀족이 그를 샀어요.
자녀들의 가정교사를 찾고 있었거든요.
노예 신분으로 팔려갔는데, 결국 그 집에서 가장 높은 지성의 자리에 앉은 거예요.
디오게네스는 통 안에서도, 노예시장 위에서도, 왕 앞에서도 언제나 같은 사람이었어요.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게 없고,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은 어디서든 자기 자신이에요.
2400년이 지난 지금, 그 노인이 조용히 물어보는 것 같아요.
당신은 지금 뭘 가지기 위해, 어떤 자신을 포기하고 있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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