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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철학자가, 같은 손으로 노예선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이걸 처음 들었을 때 저도 잠깐 멈칫했어요.
1672년 무렵, 존 로크는 영국 왕립 아프리카 회사(Royal African Company) 주식 약 600파운드어치를 매입했어요.
왕립 아프리카 회사는 당시 영국 정부가 독점권을 부여한 노예무역 전문 회사예요.
오늘날로 치면 국가 공인 인신매매 기업의 주주가 된 셈이에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1669년, 로크는 캐롤라이나 식민지 헌법(Fundamental Constitutions of Carolina) 초안 작성에 직접 참여했어요.
미국 남부 식민지를 어떻게 통치할지 규정한 문서예요.
그 헌법에 이런 조항이 들어갔어요.
"모든 자유민은 자기 흑인 노예에 대해 절대적 권력을 가진다."
로크가 손수 다듬은 문서에요.
문제는 타이밍이에요.
같은 시기에 로크는 훗날 〈통치론〉의 토대가 될 자연권, 자유, 평등 개념을 책상 위에서 정리하고 있었어요.
같은 책상, 같은 잉크병에서 자유의 철학과 노예제 헌법이 동시에 나온 거예요.
기후변화를 강의하는 교수가 알고 보니 정유회사의 대주주라는 게 밝혀지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에요.
그 교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불편한지 이해가 될 거예요.

1668년 어느 날, 한 의사가 영국 유력 정치인의 간을 갈랐어요.
그 수술이 성공하면서 영국 철학사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존 로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의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외과의사였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근대 정치철학의 아버지"라는 이미지와는 꽤 다른 이력이에요.
35살의 로크는 당시 영국의 유력 정치인이자 자신의 후원자였던 샤프츠베리 백작(Earl of Shaftesbury)의 간 농양 수술을 집도했어요.
간 농양은 간 안에 고름이 차는 병인데, 방치하면 죽어요.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히 위험한 수술이었어요.
로크는 환자 옆구리에 은관(silver tube)을 삽입해 고름을 배출시켰어요.
그리고 그 관을 제거하지 않고 몸에 그대로 뒀어요.
샤프츠베리 백작은 이후 15년을 더 살았어요.
목숨을 구해준 의사를 후원자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어요.
로크는 영국 권력의 핵심부로 들어갔고, 거기서 직접 목격한 정치의 실제가 훗날 그의 철학이 됐어요.
회장의 응급 상황에서 목숨을 구한 직원이 최측근 자문역으로 발탁되는 것과 같아요.

51살의 로크는 자기 이름을 버려야 했어요.
1683년, 영국에서 라이 하우스 음모(Rye House Plot)가 터졌어요.
찰스 2세와 그의 동생을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사건이에요.
로크는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어요.
그는 네덜란드로 도망쳤어요.
'Dr. van der Linden', 'Dr. Lynne' 같은 가명을 쓰며 거주지를 자주 옮겼어요.
영국 왕실은 네덜란드 정부에 그의 신병 인도를 공식으로 요청했어요.
회사 내 부정을 폭로하다 수배자가 된 내부고발자가 타국에서 가짜 명함으로 버티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본국 정부가 직접 그 나라에 넘겨달라고 공문을 보내는 상황이요.
1689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 일어났어요.
윌리엄 3세가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정치 판이 완전히 뒤바뀐 사건이에요.
로크는 새 왕을 모시는 메리 여왕의 배에 동승해서야 비로소 본명으로 영국 땅을 밟을 수 있었어요.
"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이, 정작 자기 인생의 5년을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한 채 살았어요.

로크는 자기 인생작을 죽고 나서야 자기 것이라고 인정했어요.
1689년,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이 출간됐어요.
정부의 권력은 국민의 동의에서 나오며, 국민은 폭정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에요.
훗날 미국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인권선언의 핵심 논리가 된 책이에요.
그런데 표지에 저자 이름이 없었어요.
완전한 익명 출판이었어요.
이후 15년 동안, 누가 물어봐도 로크는 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그 책은 내가 쓴 게 아니에요."
5년간 가명으로 도망 다닌 사람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정치적 보복이 두려웠던 망명자의 본능이 안전해진 뒤에도 몸에 깊이 배어 있었던 거예요.
1704년, 로크는 사망 직전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어요.
"〈통치론〉의 저자는 나, 존 로크다."
자유를 설파하면서 노예회사 주식을 샀고, 목숨을 구해준 정치인의 뒤를 따라 권력 핵심부에 들어갔고, 자기 이름을 버리고 5년을 버텼고, 죽기 전에야 자기 책을 자기 것이라 말한 사람이에요.
그 복잡하고 모순된 인간이 쓴 글이 지금도 민주주의 교과서에 실려 있어요.
당신이 당연하게 여기는 '국민의 저항권'이라는 개념이 어디서 왔는지, 이제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이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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