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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한 사람이 크리스마스에 심심해서 만든 거예요.
1989년 12월, 네덜란드 연구소 CWI(국립수학정보과학연구소)에서 일하던 연구원 귀도 반 로섬은 크리스마스 연휴에 사무실이 닫혀버렸어요.
집에서 뭘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새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이 작업을 "취미 프로젝트(hobby project)"라고 불렀고요.
연말 연휴에 책장 정리를 시작했다가 집 전체를 뜯어고친 사람처럼, 그 심심풀이가 30년 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됐어요.
오늘날 AI, 데이터 과학, 웹 개발에서 파이썬을 안 쓰는 분야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예요.
단 한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프로젝트가요.
그는 그 연휴에 당시 일하던 ABC 언어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어요.
ABC는 배우기 쉽게 설계된 연구용 언어였는데, 귀도는 거기서 좋은 점만 골라 더 유연하게 바꾸고 싶었어요.
그 결과물이 파이썬이에요.

파이썬이라는 이름은 뱀에서 온 게 아니라 영국 개그맨들에게서 왔어요.
귀도는 새 언어 이름이 "짧고 독특하고 약간 신비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읽고 있던 게 몬티 파이썬의 비행 서커스(Monty Python's Flying Circus) 대본집이었어요.
1970년대 영국 BBC에서 방영한 코미디 그룹의 시트콤인데, 초현실적 개그로 유명해요.
그래서 이름을 그냥 파이썬으로 정해버렸어요.
뱀 로고는 이름이 먼저 정해지고 나중에 따라붙은 거예요.
이름에 맞춰 마케팅이 만들어진 셈이에요.
회사 내부 코드 변수명을 전부 무한도전 캐릭터 이름으로 짓는 개발자가 진짜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파이썬 공식 문서에는 지금도 'spam', 'eggs' 같은 변수명이 예시로 등장해요.
몬티 파이썬의 유명한 'Spam' 콩트에서 따온 건데, 식당 메뉴 전부에 스팸이 들어가 있어서 아무것도 못 고르는 황당한 촌극이에요.

귀도가 파이썬에서 사임한 이유는 거대한 음모도, 회사 갈등도 아니었어요.
콜론 옆에 등호 하나(:=)를 넣을지 말지 다투다 지쳐서였어요.
파이썬 커뮤니티는 귀도를 BDFL(Benevolent Dictator For Life)이라 불렀어요.
"자비로운 종신 독재자"라는 뜻이에요.
처음엔 농담이었지만, 30년간 모든 언어 설계 분쟁의 최종 결정권자라는 뜻으로 굳어졌어요.
2018년 7월, 그는 'PEP 572' 논쟁에 결국 지쳐버렸어요.
PEP란 Python Enhancement Proposal의 약자로, 파이썬에 새 기능을 넣자는 공식 제안서예요.
PEP 572는 코드 한 줄 안에서 변수 할당과 조건 검사를 동시에 하는 기호(:=)를 넣자는 제안이었는데, 커뮤니티가 이걸 두고 수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싸웠어요.
가족 단톡방에서 김치찌개 레시피 하나로 200개 메시지 싸움이 벌어진 뒤 "나 이제 단톡방 나갈게"라고 적고 나가는 심정이에요.
귀도가 보낸 사임 메일 제목은 'Transfer of Power(권력 이양)'이었어요.
본문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나는 이제 영원한 휴가를 떠난다. 핵심 개발자들이 서로 합의해주길 바란다."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그냥 떠났어요.
30년 동안 모든 결정을 내려온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커뮤니티는 그 뒤 투표로 5명짜리 운영위원회를 꾸려 그 빈자리를 채웠어요.

파이썬 3이 나오고 나서 파이썬 2가 완전히 죽기까지 11년이 걸렸어요.
2008년 12월, 귀도와 팀은 더 깔끔하게 다듬은 후속 버전 파이썬 3을 발표했어요.
문제는 파이썬 3이 파이썬 2와 코드가 호환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파이썬 2로 쓴 프로그램을 파이썬 3에서 그냥 돌리면 오류가 났어요.
처음엔 5년이면 다들 옮겨갈 거라 예상했어요.
하지만 전 세계 기업, 연구실, 오픈소스 라이브러리가 너무 깊이 파이썬 2에 묶여 있었어요.
결국 공식 지원 종료일은 2015년에서 2020년 1월 1일로 미뤄졌어요.
회사가 "내일부터 새 인트라넷 씁니다"라고 공지해놓고 11년 뒤에도 옛 인트라넷을 쓰는 직원이 절반인 상황이에요.
파이썬 팀은 'Python 2 Sunset'이라는 공식 카운트다운 사이트까지 만들었어요.
신버전을 내놓고 구버전을 쓰지 말라고 11년간 설득해야 했던 거예요.
귀도는 크리스마스 심심풀이로 언어를 만들었고, 30년 동안 그 언어의 모든 싸움을 혼자 중재했고, 콜론 하나 논쟁에 지쳐 조용히 자리를 비웠어요.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지구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크리스마스 연휴에 그냥 집에서 쉬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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