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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독교가 로마 제국 국교가 된 지 30년 후에 태어난 그는, 죽는 날까지 태양 신에게 절했어요.
매일 일출, 정오, 일몰마다 무릎을 꿇었어요.
세 번.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이름은 프로클로스예요.
41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는데, 그때는 기독교가 이미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지 30년이 지난 시점이었어요.
거리에서 옛 신들의 신전은 하나씩 문을 닫고 있었죠.
그런데 프로클로스는 거꾸로 갔어요.
채식을 했고,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하루 6시간만 잤어요.
나머지 시간은 전부 공부와 기도에 썼어요.
당시 상황을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주변 모든 사람이 이미 다른 종교로 넘어간 세계에서,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라져가는 신들에게 더 열심히 절하는 사람이에요.
프로클로스는 옛 신들에게 끝까지 절한, 거의 마지막 사람이었어요.
그는 신을 다루는 일을, 유클리드가 삼각형을 다루듯 했어요.
유클리드는 "두 점을 잇는 직선은 하나다" 같은 공리에서 출발해 기하학 전체를 논리로 쌓아올린 사람이에요.
프로클로스는 신에게 똑같이 했어요.
그가 쓴 책이 『신학원론』이에요.
신을 다루는 명제 211개를 공리에서 차례차례 증명해나간 책이에요.
신비주의 종교를 수학 교과서 형식으로 풀어낸 거죠.
이게 얼마나 낯선 발상인지 감이 잘 안 오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사랑은 왜 아름다운가. 증명: 아름다움은 단일성에서 나온다. 단일성은 선보다 앞서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211개를 채운 거예요.
프로클로스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신성한 것일수록 더 정밀하게 증명되어야 해."
그 확신이 211개 명제를 완성시켰어요.
프로클로스가 죽고 약 50년 뒤, 한 기독교 저자가 그의 책을 베껴 사도의 제자라는 가짜 이름으로 출판했어요.
그것도 아무 이름이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1세기에 직접 개종시킨 인물, 디오니시우스라는 이름을 썼어요.
디오니시우스는 실제로 1세기 인물이에요.
그래서 그 이름을 빌리면 책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게 되죠.
하지만 이 저자가 누군지는 지금도 몰라요.
학자들은 그냥 "위디오니시우스"라고 불러요.
위(僞)는 "가짜"라는 뜻이에요.
가짜 디오니시우스가 쓴 책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이게 1000년간 진본으로 믿어졌어요.
중세 기독교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 그러니까 '신학대전'을 쓴 13세기 최고의 신학자조차 이 책에 직접 주석을 달았어요.
기독교 신비주의의 핵심 경전이 된 거예요.
사실을 따지면 이런 거예요.
이교도 철학자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신 개념이, 그 이교도를 없애려 한 종교의 토대가 된 거예요.
적의 설계도를 훔쳐서 자기 건물의 기초로 쓴 셈이에요.
프로클로스가 30년간 이끌었던 학교는 그의 죽음 44년 만에 황제 칙령 한 줄로 문을 닫았어요.
그 학교가 아테네 아카데미예요.
플라톤이 기원전 387년에 세운 학교로, 프로클로스 시대까지 이미 800년 넘게 이어져온 곳이에요.
프로클로스는 30년 가까이 이 학교의 수장이었어요.
이교 철학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사람이었죠.
그가 487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칙령을 내렸어요.
이교도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모두 닫으라는 명령이었어요.
아카데미의 마지막 교수들은 짐을 싸서 페르시아로 망명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평생 경영한 회사가, 자기가 죽은 직후에 정부 명령으로 강제 폐업되는 거예요.
그것도 한 세대도 안 지나서요.
프로클로스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900년 전통은 결국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의 생각은 살아남았어요. 그것도 그가 가장 경계했을 방식으로요.
적이 그의 이름을 지우고 그의 생각을 가져갔는데, 덕분에 그 생각이 1000년을 더 살아남은 거예요.
이걸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승리라고 해야 할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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