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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300년대 한 독일인 수도사가 강단에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신이여, 저를 신에게서 자유롭게 해주소서."
이 기도를 한 사람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예요.
1260년경 독일에서 태어난 도미니코회 수도사이자 신학자입니다.
도미니코회는 중세 유럽에서 이단 심문을 직접 맡아서 처리하던 교단이에요.
쉽게 말하면 교회 안의 종교 경찰이었죠.
그 교단의 수도사가 "신을 버려야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설교한 거예요.
에크하르트가 말하려 한 건 이런 거예요.
우리가 "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신을 머릿속의 개념으로 가뒀어요.
바리스타가 이런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해요. "진짜 커피 맛을 알려면, '커피'라는 단어부터 잊으세요."
그는 자신의 독일어 설교 52편 '복된 자는 가난한 자'에서 이 기도를 남겼어요.
"Ich bitte Gott, daß er mich Gottes ledig mache."
직역하면 "신이여, 저를 신에게서 자유롭게 해주소서"입니다.
개념으로서의 신을 비워야 진짜 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게 그가 말한 '영적 가난'의 핵심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 그냥 특이한 수도사가 아니었어요.
30대에 이미 파리 대학에서 정교수를 두 번 지낸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나중에 그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어요.
파리 대학은 당시 유럽 신학의 정점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와 옥스퍼드를 합쳐놓은 것과 비슷했죠.
그 신학부의 외국인 정교수 자리는 도미니코회에서 누가 가장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어요.
에크하르트는 1302~1303년에 한 번, 1311~1313년에 한 번 더 그 자리에 올랐어요.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이 자리를 두 번 맡은 도미니코회 인물은 에크하르트가 처음이었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이성으로 증명하겠다"며 중세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에요.
그래서 그에게는 평생 '마이스터'라는 호칭이 붙었어요.
라틴어로 '교사', '석사'라는 뜻이에요.
지금도 그를 부를 때 그냥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고 해요.
학계 정점을 두 번 찍은 사람의 말이니까, 그가 강단에서 한 설교의 무게는 달랐어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됐어요.
25년 뒤, 그는 같은 교단 안에서 이단 명단에 오릅니다.

그는 자기 재판의 결과를 끝내 듣지 못했어요.
그 전에 먼저 죽었거든요.
1326년, 쾰른의 대주교 하인리히 2세가 에크하르트를 이단 혐의로 심문하기 시작했어요.
빌미가 된 건 그의 설교 방식이었어요.
당시 신학은 라틴어로 이루어졌어요.
일반 신자들은 라틴어를 몰랐으니, 신학적 내용은 사실상 성직자들만의 영역이었죠.
그런데 에크하르트는 중세 독일어로 설교했어요.
시장 상인이나 베긴회 수녀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로요.
베긴회란 수도회에 공식으로 속하지 않고 스스로 경건한 삶을 살던 여성 공동체예요.
당시 교회 제도 바깥의 존재들이었죠.
주변부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신이라는 개념을 버리라"고 가르친 거예요.
에크하르트는 굴복하지 않았어요.
직접 아비뇽 교황청까지 찾아가 자기 입장을 해명하려 했어요.
그런데 변론을 이어가던 중 1328년경 세상을 떠났어요.
판결은 이듬해 나왔어요.
1329년, 교황 요한 22세는 칙서 'In agro dominico'를 발표해 그의 28개 명제를 이단 혹은 이단 의혹으로 정죄했어요.
소송을 걸고 법정에서 변론하다 죽었는데, 사후 1년 만에 패소 판결을 받은 셈이에요.

그가 이단으로 정죄된 지 600년이 지났을 때, 그를 가장 먼저 다시 꺼내 읽은 사람은 일본의 선불교 학자였어요.
스즈키 다이세쓰는 20세기 초 일본의 불교 학자예요.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죠.
그는 에크하르트가 말한 '영혼의 불꽃'이라는 개념과 선불교의 깨달음이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고 봤어요.
'영혼의 불꽃', 독일어로 '퓐클라인(Fünklein)'이에요.
에크하르트는 인간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신과 직접 닿아 있는 어떤 부분이 있다고 했어요.
신에 대한 개념을 다 비웠을 때, 그 불꽃이 신과 하나가 된다는 거예요.
스즈키가 보기에 선불교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어요.
분별과 개념을 비워야 본래 자리가 드러난다는 거죠.
14세기 독일 수도사의 언어가 20세기 일본 선승의 눈에 낯설지 않았던 거예요.
그다음은 연쇄 반응이었어요.
철학자 하이데거는 에크하르트의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 즉 '내맡김'이라는 개념을 빌려 자기 후기 사상의 핵심어로 삼았어요.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그의 신비주의를 분석심리학의 '자기(Self)' 이론에 연결했어요.
출판 금지됐던 무명 저자의 책이 100년 뒤 세계 지성들의 공통 추천 도서가 된 것과 같아요.
그것도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1329년에 이단으로 정죄된 수도사가, 지금은 기독교 신비주의와 선불교와 실존주의를 연결하는 다리로 읽히고 있어요.
그가 "신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신을 만난다"고 말했을 때, 혹시 교회만이 아니라 종교라는 경계선 자체를 가리킨 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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