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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크세노파네스는 92살까지 살았는데, 그중 67년을 집 없이 떠돌았어요.
25살에 난민이 됐고, 죽을 때까지 돌아갈 고향이 없었거든요.
기원전 545년 무렵, 페르시아 군대가 지금의 튀르키예 서부 해안에 있던 이오니아 도시들을 하나씩 점령해요.
크세노파네스의 고향 콜로폰도 그중 하나였어요.
25살의 크세노파네스는 점령당한 도시에서 빠져나와 그리스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가 직접 남긴 시 단편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나는 67년 동안 그리스 땅을 위아래로 던지며 살았다."
밥은 어떻게 먹었냐고요? 시를 낭송해서 받는 사례비로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연회에 초대받으면 서사시를 외워 읊고 밥값을 받는, 오늘날로 치면 행사 사회자 겸 버스킹 아티스트 같은 직업이었거든요.
시칠리아, 남부 이탈리아, 그리스 도시들을 전전했어요.
그런데 그 떠돌이 일용직 시인이, 2500년 후에도 교과서에 이름이 남는 철학자가 됐어요.
호메로스를 가장 먼저 공격한 사람은, 호메로스를 외워서 먹고살던 시인이었어요.
크세노파네스는 랩소드였어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째로 외워 낭송하던 직업 시인을 그렇게 불러요.
오늘날로 치면 성경을 외워 설교하는 목사와 비슷한 위치예요.
그런데 그 성경을 외워 먹고사는 사람이 설교단에서 이렇게 선언한 거예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인간들 사이에서 수치이고 비난거리인 모든 것, 도둑질, 간음, 서로 속이기를 신들에게 돌렸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함께 그리스 신화의 틀을 잡은 시인으로, 이 둘은 당시 그리스인에게 사실상 경전의 저자들이었어요.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그가 쓴 서사시는 그리스인에게 성서 역할을 했어요.
제우스는 어떻게 생겼는지, 신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영웅이란 무엇인지를 호메로스가 정의했거든요.
그 정의에 "틀렸다"고 말하는 건, 오늘날 SNS에 "성경 속 신은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쓰는 것보다 훨씬 과격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크세노파네스는 멈추지 않았어요.
호메로스를 낭송해서 오늘 밥값을 벌고, 자기 시에서는 호메로스를 공격했어요.
그는 자기 입장이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신이 인간을 닮은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자기 모양대로 만들었다고, 그는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적었어요.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단편이에요.
"에티오피아인은 자기네 신을 검고 코가 납작하다 하고, 트라키아인은 푸른 눈에 붉은 머리라 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 발 더 나갔어요.
"만약 소와 말과 사자에게 손이 있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들은 자기 모습대로 신을 그릴 것이다."
말은 말처럼 생긴 신을, 소는 소처럼 생긴 신을 그릴 거라는 뜻이에요.
결국, 신의 생김새는 그 신을 숭배하는 존재의 생김새를 반영할 뿐이라는 거예요.
이건 오늘날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무신론의 핵심 논리와 완전히 같아요.
21세기에 이런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댓글창이 난리가 나는데, 이 문장이 2500년 전에 이미 완성돼 있었어요.
떠돌이 시인의 시 단편으로요.
그렇다고 크세노파네스가 신이 아예 없다고 주장한 건 아니에요.
그는 오히려 "하나의 신이 있는데, 신들과 인간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며, 외모도 생각도 인간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썼어요.
특정 민족의 모양을 빌리지 않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신이었어요.
평생 고향 없이 떠돈 사람이 발명한 신이, 어느 곳에도 특정되지 않는 신이었다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요.
지질학이 학문으로 등장하기 2300년 전, 한 떠돌이 시인이 산 위에서 조개껍데기를 보고 답을 맞혔어요.
크세노파네스는 시칠리아와 파로스, 몰타 같은 지중해 섬들을 떠돌면서 산을 많이 올랐어요.
그 산 위에서 이상한 것들을 발견했거든요.
조개, 물고기, 해초 모양이 새겨진 돌이었어요.
산 꼭대기에서 조개껍데기를 발견하면 보통 "이게 왜 여기 있지?" 하고 지나쳐요.
크세노파네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론을 냈어요.
"땅이 한때 바다였다가 다시 말라붙은 것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 오래전 생물의 흔적이 돌에 새겨진 것을 보고 내린 추론이에요.
이건 그리스 문헌에 남아 있는 최초의 화석 추론이에요.
지구의 역사가 지층에 기록된다는 사실은 19세기에야 지질학이 체계화하면서 증명됐어요.
그런데 크세노파네스는 2300년 앞서 같은 결론에 도달했어요.
도구도 없었고, 학위도 없었고, 연구실도 없었어요.
있었던 건 67년 동안 쌓인 걸음 수와,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질문 하나였어요.
집 없이 떠돈 사람이 가장 오래된 답을 갖고 있었다는 게, 뭔가 이상하게 맞는 느낌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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