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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토마스 모어가 1516년에 쓴 『유토피아』는 외교 출장의 빈 시간에 친구들과 주고받던 농담에서 시작됐어요.
모어는 당시 잉글랜드 왕의 외교 사절로 플랑드르, 지금의 벨기에에 머물고 있었어요.
회의와 회의 사이 자투리 시간에 6개월 만에 완성한 라틴어 소설이었어요.
그가 신뢰하는 친구 에라스무스가 출판을 권유했어요.
에라스무스는 당시 유럽 최고의 지식인이었어요.
그 에라스무스가 "이거 내야 해"라고 했으니, 곧 유럽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책 제목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에요.
책 안에서 모어는 사유재산이 없고 하루 6시간만 일하며 어떤 종교든 관용하고 안락사도 허용되는 나라를 그렸어요.
오늘날로 치면 주4일제 복지국가의 설계도예요.
진짜 반전은 이거예요.
이 책은 처음부터 진지한 정치 이론서가 아니었어요.
"완벽한 나라를 처음부터 설계한다면"이라는 친구들끼리의 지적 장난이 출발점이었는데, 그게 르네상스 정치 사상 전체를 바꿔놓은 고전이 됐어요.
회사 뒤풀이 자리에서 누군가 "우리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 어떨까"라고 끄적인 메모가 500년 후까지 교과서에 실리는 격이에요.

헨리 8세는 모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정원을 거닐 정도로 가까웠어요.
그리고 모어는 그 친밀함을 두려워했어요.
헨리 8세는 즉위 초부터 모어를 각별히 챙겼어요.
런던 첼시에 있는 모어의 집에 예고도 없이 찾아와 정원을 거닐며 천문학과 신학 얘기를 나눴어요.
신하가 아니라 친구처럼요.
1529년, 헨리 8세는 모어를 대법관(Lord Chancellor)으로 임명했어요.
대법관은 당시 영국에서 평민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와 대법원장을 합쳐놓은 자리예요.
하지만 모어의 사위 윌리엄 로퍼가 나중에 남긴 회고록에는 모어의 속마음이 담겨 있어요.
왕이 어깨에 팔을 두를 때마다 모어는 기뻐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 머리가 왕에게 성 하나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는 망설이지 않을 거야."
사장이 매일 집에 찾아와 어깨를 두드려주는데, 그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언제 목을 조를지 모른다는 걸 아는 상황이에요.
모어는 그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6년 동안 그 자리에 남았어요.

유토피아의 저자가 대법관이 되자, 그가 직접 6명을 화형대에 보냈어요.
모어는 대법관으로 재임하던 1529년부터 1532년 사이 개신교도 6명을 이단죄로 화형에 처했어요.
개신교란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든 기독교 개혁 운동이에요.
루터가 독일에서 불을 댕겼고, 그 불이 잉글랜드까지 번지고 있었어요.
모어가 특히 집착한 건 성서 번역이었어요.
학자 윌리엄 틴들이 신약성서를 영어로 번역해 보급하고 있었는데, 모어는 이 영어 성서를 영국에 들여오는 행위 자체를 사형죄로 다스렸어요.
당시 성서는 라틴어로만 존재했고, 라틴어를 아는 사제들이 해석을 독점했어요.
틴들의 번역본은 "이제 누구든 직접 읽을 수 있다"는 선언이었고, 모어는 그걸 체제 전복으로 봤어요.
모어는 자기 입장을 직접 글로 남겼어요.
『이단에 관한 대화』에서 이렇게 썼어요.
"이단은 영혼의 살인이다. 화형은 정당하다."
그런데 잠깐, 『유토피아』에서 모어는 뭐라고 했냐면요.
"어떤 종교든 관용해야 한다"고 했어요.
종교 관용을 이상 사회의 필수 조건으로 그린 바로 그 사람이, 권력을 잡자 정확히 그 반대를 했어요.
다양성 강사로 명성을 쌓은 사람이 부서장이 되자 다른 생각을 가진 직원을 모두 해고하는 격이에요.
이걸 위선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권력이 사람을 바꾸는 방식이라고 불러야 할지, 지금도 역사학자들이 싸우는 주제예요.
토마스 모어는 자기가 화형시킨 이단자들과 똑같이, 친구의 명령으로 처형됐어요.
1532년, 모어는 대법관직을 사임했어요.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려 했는데 교황이 허락하지 않자, 헨리 8세가 직접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겠다고 선언했어요.
모어는 그 이혼에도, 그 선언에도 동의할 수 없었어요.
1534년, 헨리 8세는 수장령을 내렸어요.
수장령이란 왕이 교황 대신 영국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는 선언으로, 모든 신하가 서명으로 동의를 표해야 했어요.
모어는 서명하지 않았어요.
그는 런던 타워에 갇혔고, 15개월 동안 재판 내내 단 한마디도 반대 의견을 입 밖에 내지 않았어요.
라틴어 법언을 방패로 썼어요.
"qui tacet consentire" 침묵은 동의로 간주된다는 뜻이에요.
그의 계산은 이랬어요.
"아무 말도 안 하면 법적으로 동의한 셈이 돼. 처형할 근거가 없어."
하지만 한 증인이 나타나 모어가 왕의 수장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거짓 증언했고, 그걸 근거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어요.
1535년 7월 6일, 모어는 타워힐에서 참수됐어요.
마지막 말은 이랬어요.
"나는 왕의 충실한 종이에요. 하지만 신의 종이 먼저예요."
처형 후 그의 머리는 도성 입구에 효수됐어요.
딸 마거릿 로퍼가 그 머리를 수습해 30년 동안 자기 곁에 보관하다가, 죽을 때 함께 묻혔어요.
모어는 이단자를 화형시킬 때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믿었어요.
6년 뒤, 그 믿음은 자기 자신을 향했어요.
그가 화형대로 보낸 이단자들도 정확히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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