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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샌델은 18살 고등학생이었어요.
그런데 그 고등학생이 주지사에게 공개 토론을 요청했어요.
더 놀라운 건, 레이건이 거절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1971년, 로스앤젤레스의 공립고교 팰리세이즈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마이클 샌델은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우리 학교로 오셔서 토론하시죠."
레이건은 직접 학교를 찾아왔어요.
2,400명의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60살 주지사와 18살 학생회장이 1대1로 마주 앉았어요.
주제는 베트남 전쟁, 사회보장제도, 투표 연령이었어요.
오늘로 치면 신입사원이 회장에게 "강당에서 저랑 공개 토론해보시겠어요?"라고 제안했더니, 회장이 "좋아, 가자"고 답한 상황이에요.
그날 샌델은 사실상 졌어요.
60년의 정치 경험을 가진 레이건에게 논리가 밀렸거든요.
하지만 그 패배가 샌델의 방향을 바꿨어요.
"왜 나는 졌는가?"
그 질문이 그를 정치철학으로 이끌었어요.
이기지 못했던 그 토론이, 결국 그가 평생 붙들 질문의 출발점이 됐어요.

29살 샌델이 쓴 첫 책은, 자기 학교 거장의 이론을 무너뜨리는 데 바쳐졌어요.
1982년에 출간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가 그 책이에요.
타깃은 같은 하버드에 있던 정치철학계의 최고 권위자, 존 롤스였어요.
롤스는 1971년에 『정의론』을 출간해 20세기 정치철학을 통째로 재편한 인물이에요.
그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내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규칙을 설계해야 해."
롤스는 이 출신과 배경을 지운 순수한 개인을 '연고 없는 자아'라고 불렀어요.
스마트폰 공장 초기화 상태처럼, 아무 배경도 없는 백지 상태의 사람으로서 판단하자는 거예요.
그래야 진짜 공정한 규칙이 나온다는 거였어요.
샌델은 정면으로 반박했어요.
"그런 자아는 없어요. 인간은 태어난 곳, 자란 공동체, 맺어온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거든요."
배경을 지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한 권으로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이 시작됐어요.
자유주의는 "개인의 선택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고,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입장이에요.
30년을 이어간 학계 대논쟁의 불씨를, 29살 신참이 당겼어요.

철학자 한 명을 보려고 한국에서 1만 4천 명이 야외 잔디밭에 모였어요.
2012년,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철학자의 야외 강연으로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규모였어요.
그 전 2010년,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됐어요.
하버드 정치철학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인데, 한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팔렸어요.
"가장 공정한 분배는 어떤 것인가?", "군 복무 중 사망한 병사를 영웅이라 불러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지하철 안에서도 읽히기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는 학계의 권위자였던 샌델이, 한국에서는 BTS급 인파를 동원하는 대중 스타가 된 거예요.
자국에서는 학자였고, 외국에서는 팝스타였어요.
미국에서 평범한 야구선수가 일본에서 시즌 입장권 매진 스타가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샌델이 한국에서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입시, 취업, 능력으로 줄을 세우는 사회에서, "그 줄이 정말 공정한가?"를 묻는 철학이 급소를 건드렸거든요.
그 질문은 한국 독자들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하버드 정교수가, 하버드를 만든 시스템을 공격하는 책을 썼어요.
2020년 출간된 『공정하다는 착각』이 그 책이에요.
타깃은 능력주의(meritocracy), 즉 능력에 따라 보상을 분배하는 체제였어요.
능력주의를 쉽게 설명하면 이런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에 가고, 그게 공정하다."
샌델이 올라선 바로 그 사다리예요.
하지만 샌델은 그 사다리를 걷어찼어요.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심고, 패자에게 굴욕을 안겨요. 열심히 했는데 못 올라간 사람에게 '네 능력이 부족한 거야'라고 말하는 시스템이거든요."
결국 그 오만과 굴욕이 사회를 갈라놓는다는 거예요.
1등으로 입사해 부사장까지 오른 사람이 "우리 회사의 인사 평가 시스템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책을 쓴 상황이에요.
자기 위치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한 거예요.
샌델은 능력주의가 만든 가장 큰 수혜자였고, 그래서 그 비판이 더 날카롭게 들렸어요.
18살에 진 토론에서 시작해, 자신을 키운 시스템을 공격하기까지.
샌델이 평생 물어온 질문은 결국 하나예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 정말 공정한가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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