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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철학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어요.
마사 누스바움은 1947년 뉴욕의 부유한 백인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전형적인 상류층 사교계 여성이었죠.
그 집안에서 '올바른 삶'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10대가 된 누스바움은 어머니가 설계한 그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었던 어머니의 가치관에 반발한 거예요.
그 반발이 16살에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졌어요. 유대교로 개종한 거예요.
단순히 종교를 바꾼 게 아니었어요.
WASP, 즉 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로 이루어진 당시 미국 사회의 지배 계층이 자기 세계에 등을 돌리는 첫 번째 선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선택은 평생 번복되지 않았어요.
나중에 누스바움이 유대인 남성 알란 누스바움과 결혼했을 때, 어머니는 끝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죽을 때까지요.
그래서 누스바움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어요.
하버드는 그녀에게 종신직을 주지 않았고, 그 결정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어요.
1975년, 누스바움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같은 학과에서 조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죠.
커리어는 순탄해 보였어요.
하지만 1982년, 테뉴어(종신직) 심사에서 탈락했어요.
테뉴어란 한 번 받으면 평생 해고되지 않는 정년 보장 직위예요.
학자에게는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티켓이기도 해요.
당시 하버드 고전학과는 단 한 번도 여성에게 그 자리를 준 적이 없었어요.
나중에 누스바움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너무 여성스러웠고, 너무 문학적이었으며, 너무 야망 있었어요."
이 문장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면, 결국 이 세 가지가 탈락 사유였다는 거예요.
승진 직전에 밀려난 뒤 결국 그 회사의 외부 컨설턴트로 돌아온 상황과 같아요.
누스바움은 이후 브라운 대학교로 옮겼어요.
그리고 30년이 흐른 뒤,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들은 그녀를 외부 강연자로 초청하게 됐어요.
거절한 쪽이 오히려 손해를 본 거예요.
한 나라가 부자라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이 잘 산다는 뜻은 아니에요.
1986년부터 누스바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유엔 경제개발 연구소(WIDER)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이란 단순히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자유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경제학자예요.
두 사람은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 했어요.
그래서 누스바움은 인도 농촌으로 갔어요.
거기서 그녀가 만난 건 글을 읽지 못하는 여성들이었어요.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여성들이요.
그 나라의 GDP(국내총생산)는 숫자로 집계됐어요.
GDP란 한 나라가 1년 동안 만들어낸 모든 물건과 서비스의 값을 합친 수치예요.
쉽게 말하면 나라 전체의 '연봉'이에요.
하지만 그 숫자 안에 이 여성들의 삶은 담겨 있지 않았어요.
연봉이 높다고 모든 직원이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누스바움은 그 한계를 눈으로 확인하고, 결국 질문을 바꿨어요.
"이 나라는 얼마나 버나요?" 대신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그 질문에서 나온 이론이 역량 접근법(Capabilities Approach)이에요.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로 삶의 질을 측정하자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법적으로 투표권이 있어도 혼자 투표소에 갈 수 없다면 그 권리는 없는 것과 같아요.
숫자가 아니라 실제 가능성으로 보자는 거예요.
반전은 이 이론을 만든 사람이 고대 그리스어를 전공한 고전학자였다는 것이에요.
인권 철학자가 분노를 버리라고 했을 때, 동료 페미니스트들은 그녀를 배신자라고 불렀어요.
2016년, 누스바움은 『분노와 용서(Anger and Forgiveness)』를 출간했어요.
이 책에서 그녀가 한 주장은 하나예요.
"분노는 거의 항상 도덕적으로 잘못된 감정이에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분노하는 건 당연해 보여요.
하지만 그 분노는 결국 한 방향으로만 흘러요.
"복수해야 해."
그리고 복수 욕구는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은 폭력의 반복으로 이어진다는 게 누스바움의 주장이에요.
그녀가 가장 이상적인 사례로 꼽은 건 넬슨 만델라예요.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다 감옥에 27년을 갇혀 있었어요.
나온 뒤, 그는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가해자가 진실을 고백하면 처벌하지 않는 방식이에요.
누스바움은 이것을 분노를 버린 게 아니라, 분노가 이끄는 방향을 바꾼 것으로 봤어요.
"어떻게 복수할까?" 대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까?"로의 전환이요.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시점이 하필 #MeToo 운동이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어요.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분노를 경계하라는 책을 낸 거예요.
동료 페미니스트들이 "배신자"라고 부른 건 그래서예요.
그런데 누스바움은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어요.
분노가 정당하다는 것과, 분노에 올라타는 게 옳다는 건 다른 이야기라는 거예요.
16살에 어머니를 등지면서 시작한 그 고집이 70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그 고집이 옳은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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