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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차르바카는 인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철학 학파예요.
그런데 그들 자신의 책은 단 한 줄도 남아있지 않아요.
어떤 사람의 일기장이 통째로 삭제됐는데, 그를 욕하던 사람들의 댓글만 2,500년 넘게 남아있는 상황이에요.
우리가 차르바카를 아는 유일한 통로는 그들을 반박하기 위해 쓴 적들의 글이에요.
차르바카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등장한 유물론·무신론 학파예요.
원래 이름은 로카야타(Lokāyata),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그들의 핵심 경전이었던 브리하스파티 수트라를 비롯해 원전이 모두 소실됐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생겼어요.
베단타 힌두 철학자들, 자이나교 학자들, 불교 사상가들이 차르바카를 논박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일일이 인용했어요.
결국 적들이 쓴 반박문 속에서 차르바카의 사상이 보존된 거예요.

차르바카는 윤회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단언했어요.
그러니 빚을 내서라도 오늘의 기 버터를 먹으라고 했어요.
"리남 크리트바 그리탐 피베트(rinam krtva ghrtam pibet)"라는 산스크리트 문구가 있어요.
번역하면 "빚을 내서라도 기 버터를 먹어라"예요.
기 버터는 인도에서 우유를 오래 끓여 만든 고급 정제 버터로, 당시 가장 사치스러운 식품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마이너스 통장 끌어다 오마카세 가라"와 비슷한 말이에요.
다음 생이 없으니 지금 이 삶에 모든 걸 쏟으라는 거예요.
한 번뿐인 인생, YOLO가 2,500년 전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셈이에요.
종교가 일상의 전부였던 고대 인도에서 이 말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었어요.
내세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거든요.
그 도구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한 거예요.

차르바카에게 베다는 신성한 경전이 아니었어요.
제사 비용을 챙기려는 사기꾼들이 만든 사업 매뉴얼이었어요.
베다는 약 3,500년 전부터 전승된 힌두교 최고의 경전이에요.
중세 유럽으로 치면 성경과 같은 위치예요.
차르바카는 그 책을 "사기꾼·광대·악마들의 작품"이라고 대놓고 불렀어요.
그들의 논리는 이랬어요.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고 베다가 말한다면, 그 복을 주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야?"
차르바카는 직접 지각(프라티야크샤),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프라티야크샤는 "직접 경험으로 검증된 것"을 뜻해요.
내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은 증거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차르바카는 신도, 영혼도, 내세도 모두 거부했어요.
중세 유럽에서 누군가 성경을 "사제들이 돈 벌려고 쓴 책"이라고 공개적으로 가르쳤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차르바카는 그 말을 인도 안에서 2,000년 넘게 살아남으며 했어요.
이건 그냥 용감한 게 아니라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에요.

차르바카의 시조는 인간이 아니었어요.
신들에게 베다를 가르친 바로 그 스승이었어요.
차르바카를 만든 인물로 전해지는 이름은 브리하스파티(Brihaspati)예요.
그런데 브리하스파티는 인도 신화에서 신들의 스승, 즉 데바구루(Devaguru)예요.
인드라를 비롯한 베다의 신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준 신성한 존재예요.
베다를 "사기꾼의 책"이라고 부른 학파의 창시자가, 정작 베다 신화 속 신들의 스승이라는 거예요.
교황이 무신론 동호회의 명예 회장이었다고 누군가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인도 사상사에서 손에 꼽히는 자기모순이에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해석이 분분해요.
어떤 학자는 브리하스파티가 원래 다른 맥락에서 존재하다가 나중에 차르바카와 연결됐다고 봐요.
하지만 그 연결이 일어난 경위를 설명하는 문헌은 남아있지 않아요.
결국 차르바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요.
자신의 책도, 명확한 기원도 없이, 적들의 비난과 신화 속 이름 하나만 달고 2,500년을 건너왔어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차르바카를 읽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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