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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키케로의 가족 중에 로마 정치계에 발 들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기원전 106년, 키케로는 로마에서 100km 떨어진 아르피눔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오늘날로 치면 서울 기준 지방 소도시 출신인 셈이에요.
로마 정치는 대대로 파트리키(patricii), 즉 귀족이 독점하던 세계였어요.
파트리키란 수백 년간 로마를 지배해온 명문가들로, 집정관 자리는 사실상 그들의 세습 자리였어요.
지방대 출신이 삼성에 지원서를 내는 게 아니라, 아예 지원 자격이 없던 시대예요.
그런데 키케로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판도를 뒤집어요.
법정 연설 하나로 로마 전체에 자기 이름을 각인시켰고, 결국 로마 최고 권좌인 집정관(consul)에 오릅니다.
집정관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과 비슷한 자리로, 로마를 1년 동안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두 명 중 한 명이에요.
이런 사람을 로마에서는 노부스 호모(novus homo), '새사람'이라고 불렀어요.
한 세대에 한두 명꼴로 나오는, 가문 없이 실력만으로 정상에 오른 인물이라는 뜻이에요.
키케로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만큼 빠르게 정상에 오른 '새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법을 무기로 출세한 변호사가,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는 법을 건너뛰었어요.
기원전 63년, 집정관이 된 첫해에 키케로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만났어요.
카틸리나(Catilina)라는 인물이 로마 정부를 뒤엎으려는 음모를 꾸민 거예요.
카틸리나는 빚더미에 앉은 몰락한 귀족으로, 집정관 선거에서 두 번 떨어진 뒤 쿠데타를 택했어요.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네 차례 연설로 그 음모를 정면으로 폭로해요.
첫 번째 연설의 시작은 지금도 유명해요.
"카틸리나여,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를 시험할 것인가?"
그 연설 앞에 카틸리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로마를 떠났어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키케로는 음모 가담자 다섯 명을 원로원 결의만으로, 재판 없이 그 자리에서 교살시켰어요.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재판 받을 권리가 있었어요.
하지만 키케로는 비상사태라는 이유로 그 권리를 건너뛰었어요.
원로원은 그에게 "국부(pater patriae)", 나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바쳤어요.
그런데 5년 뒤, 그 자부심은 그를 잡아먹었어요.
기원전 58년, 재판 없이 시민을 처형했다는 이유로 키케로는 추방형을 받았어요.
18개월간 망명 생활을 하면서, 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법을 장애물로 취급했던 자기 자신과 마주했을 거예요.

키케로는 자기 사형선고를 14편의 연설로 직접 썼어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Caesar)가 암살되면서 로마는 권력 공백 상태가 됐어요.
카이사르의 부하였던 안토니우스(Antonius)가 그 공백을 채우려 했어요.
당시 62세였던 키케로는 다시 한번 연단으로 나갔어요.
그는 안토니우스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연설을 14편 썼어요.
이 연설집의 이름은 필리피카이(Philippicae).
약 300년 전 그리스 웅변가 데모스테네스가 마케도니아 왕 필립포스 2세를 공격하던 연설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이건 단순한 이름이 아니에요.
자기를 데모스테네스에 빗댄, 노골적인 도발이었어요.
데모스테네스는 결국 필립포스에게 패했지만,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된 웅변가였거든요.
오늘날로 치면, 은퇴한 60대 칼럼니스트가 새 권력자를 향해 14주 연속 저격 칼럼을 쓰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자기 이름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저항 웅변가와 나란히 놓으면서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키케로 본인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키케로가 평생 연설하던 광장의 연단에, 그의 머리와 두 손이 못 박혔어요.
기원전 43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손을 잡고 정적 숙청 명단을 만들었어요.
이 명단을 프로스크립티오(proscriptio)라고 불렀어요.
이름이 오르면 그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고, 키케로는 그 명단의 1순위였어요.
키케로는 도망쳤어요.
하지만 결국 가마에 실린 채 붙잡혔고, 목과 두 손이 잘렸어요.
안토니우스는 그 잘린 머리와 두 손을 로마 광장의 연단인 로스트라(rostra)에 못 박아 전시했어요.
로스트라는 키케로가 평생 연설하던 바로 그 자리였어요.
카틸리나를 폭로하던 연설도, 안토니우스를 저격하던 필리피카이도, 모두 그 위에서 나왔어요.
안토니우스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낸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안토니우스의 아내 풀비아(Fulvia)는 잘린 혀를 꺼내 자기 머리핀으로 거듭 찔렀다고 전해져요.
평생 말로 권력을 얻고, 말로 적을 만들었던 그 혀를요.
평생 말로 산 사람이 말 때문에 죽었고, 그 혀는 죽은 뒤에도 한 번 더 모욕당했어요.
역사에는 그런 인물들이 있어요.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 때문에 끝까지 쫓기다가, 바로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
키케로의 혀에 머리핀이 꽂히는 그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떠올렸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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