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정교한 논리 체계를 만든 사람은 원래 트랙을 달리던 운동선수였어요.
오늘날 터키 남부 해안에 있던 솔리라는 도시 출신의 크리시포스는 청년기에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 뛰었어요.
마라톤 국가대표급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수학과 대학원에 들어간 셈이죠.
계기는 평범하지 않았어요.
집안이 몰락해 재산을 잃은 뒤, 30세 무렵의 크리시포스는 아테네로 발길을 돌렸어요.
그리고 스토아 학파의 수장이었던 클레안테스 문하에 들어갔어요.
스토아 학파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 학교예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으로 살아라"는 사상으로 유명하죠.
오늘날에도 "스토아적"이라는 말이 "감정 없이 침착한"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게 바로 이 학파에서 왔어요.
하지만 당시 스토아 학파는 위기였어요.
창시자 제논이 죽고, 후계자 클레안테스는 논리에 약했어요.
외부의 반박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죠.
그 빈자리를 채운 게 트랙을 뛰던 이 남자였어요.
크리시포스가 죽었을 때 그의 서재에는 705권의 책이 있었어요.
지금은 0권이에요.
3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전기 작가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기록으로 남겼어요.
크리시포스는 하루에 500줄씩 썼다고 해요.
오늘날 A4 용지 두 장 분량을 매일, 빠지지 않고요.
705권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냐면, 한 사람이 20살부터 73살까지 5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주 한 편씩 썼을 때 나오는 숫자예요.
그것도 모두 철학, 논리학, 윤리학 전문 서적으로요.
그런데 그 705권 중 지금 남은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가진 건 다른 저자들이 자기 글 속에 인용한 단편 약 475개뿐이에요.
한 사람의 평생 작업 전체가 다른 사람의 각주로만 남은 거예요.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런 말을 남겼어요.
"크리시포스가 없었다면 스토아도 없었을 것이다."
705권의 책은 사라졌지만, 그 책들이 만든 체계는 살아남았어요.
컴퓨터가 작동하는 원리의 핵심은 기원전 3세기 한 그리스인의 머리에서 이미 만들어졌어요.
크리시포스가 만든 건 명제 논리예요.
쉽게 말하면 "만약 A라면 B다, A가 맞다, 그러면 B도 맞다" 같은 식으로 문장들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 논리 체계예요.
이게 왜 특별하냐면, 당시 논리학의 표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었거든요.
삼단논법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처럼 사물의 속성을 다루는 방식이에요.
크리시포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속성 대신 조건과 상황 자체를 논리의 재료로 썼어요.
문제는 아무도 못 알아봤다는 거예요.
그의 논리학은 중세 내내 잊혔어요.
2000년이 지난 19세기에 독일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같은 체계를 다시 발명하고서야 세상이 "이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그 프레게의 논리학이 오늘날 컴퓨터 회로의 기초가 됐어요.
스마트폰 안에서 "만약 이 조건이면 이 신호를 보내라"는 식으로 작동하는 0과 1의 언어가 정확히 이 논리 체계예요.
고대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시에 이런 말이 전해졌거든요.
"신들이 논리학을 한다면 크리시포스의 논리학을 할 것이다."
그 말이 2000년 뒤에 맞는 말이 됐어요.
기원전 206년, 73세의 크리시포스는 자기 농담에 너무 크게 웃어서 죽었어요.
그날 크리시포스는 정원에서 당나귀가 자기 무화과를 게걸스럽게 먹는 걸 봤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노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저 당나귀에게도 와인을 따라줘야겠군."
그 농담이 너무 웃겼던 건지, 크리시포스는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웃음이 멈추지 않은 채로 숨이 멎었어요.
평생 가장 엄밀한 논리를 만들어온 사람의 마지막이었어요.
빈틈없는 논증으로 학파를 구한 남자가, 당나귀를 향한 즉흥 농담 한 마디에 죽은 거예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 장면을 꽤 진지하게 기록으로 남겼어요.
크리시포스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전했고, 그게 수백 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왔어요.
스토아 철학은 "감정에 흔들리지 말라"고 가르쳤어요.
이성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게 스토아의 핵심이었죠.
하지만 정작 그 철학을 체계화한 사람은 웃음을 참지 못해 죽었어요.
어쩌면 크리시포스는 그 아이러니를 가장 즐긴 사람이었을지도 몰라요.
자기 농담이 그렇게까지 웃길 거라는 건 본인도 몰랐겠지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