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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 불리는 사람이 청년 시절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다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은 거의 믿지 않아요.
하지만 이건 사실이에요.
율곡 이이는 1551년, 열여섯 살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었어요.
신사임당은 당시 조선에서 손꼽히는 시인이자 화가였어요.
이이에게는 단순한 어머니가 아니라, 처음 글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죠.
어머니가 죽으면 무덤 곁에 초가를 짓고 3년간 머무는 관습이 당시 조선에 있었어요.
시묘살이라고 불리는 이 풍습은, 오늘날로 치면 3년 내내 무덤 옆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슬픔을 버티는 것과 같아요.
이이는 그 3년을 다 채웠어요.
그리고 1554년, 열아홉 살 이이는 금강산 유점사로 걸어 들어갔어요.
머리를 깎고, 법명 의암(義庵)을 받고, 승려가 됐어요.
여기서 중요한 맥락이 있어요.
조선은 불교를 공식적으로 억압한 나라예요.
공자와 맹자의 사상, 즉 유학을 나라의 근본 이념으로 삼았고, 절은 아예 도성 안에 발도 들이지 못했어요.
"불교에 빠졌던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죽을 때까지 정적들의 공격 무기로 쓰였어요.
그런데 이이는 단 한 번도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모든 게 무의미해진 청년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답을 그는 찾으러 간 것이었으니까요.

그는 1년 뒤 절을 떠났고, 그 후 응시한 모든 과거 시험에서 1등을 했어요.
과거는 조선에서 관직에 오르기 위해 치르는 국가 시험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쳐놓은 것인데, 단계가 여럿이고 각 단계마다 수천 명 중 수십 명만 붙는 시험이에요.
이이는 생원시, 진사시, 문과 초시, 복시, 전시까지 모두 9번을 응시해서 9번 모두 수석으로 통과했어요.
그래서 붙은 별명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아홉 번 1등을 한 사람이에요.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 이 기록은 그 한 사람뿐이에요.
회사를 한 번 그만뒀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거치는 보직마다 전체 1등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저 사람 예전에 절에 있었잖아"라고 속닥이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성적이 너무 압도적이라 어떤 정적도 그를 무너뜨릴 수 없었어요.
결국 이이는 자신의 가장 약한 자리를 자신의 가장 강한 자리로 덮었어요.

이이는 23살에 자기보다 35살 많은 이황을 직접 찾아갔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편지로 우주의 원리를 다퉜어요.
이황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리학자였어요.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를 함께 탐구하는 학문으로, 쉽게 말하면 "사람은 왜 착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우주의 어느 법칙에서 오는가"를 연구하는 철학이에요.
이황은 이 분야에서 당시 조선의 최고 권위자였어요.
두 사람 논쟁의 핵심은 이(理)와 기(氣)였어요.
이(理)는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 기(氣)는 그 원리를 실제로 구현하는 에너지 같은 것이에요.
컴퓨터로 치면 이(理)는 프로그램 코드고 기(氣)는 그 코드를 실행하는 하드웨어예요.
이황은 "둘은 서로 독립된 별개의 것이야"라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했어요.
이이는 "아니야, 둘은 사실 분리할 수 없어"라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맞섰어요.
메신저도 이메일도 없던 시절, 답장 한 통이 몇 달씩 걸리는 논쟁이었어요.
그런데 둘은 35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서로를 깎아내리지 않았어요.
이황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의 편지 어디서도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 없었어요.
합의 없이 논쟁을 이어가는 것이 학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줬어요.

이이가 죽고 8년 뒤, 그가 경고했던 그 일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어났어요.
1583년, 이이는 48살의 나이로 선조에게 직접 건의를 올렸어요.
"지금 당장 10만 명의 군대를 길러야 합니다. 일본이 쳐들어올 겁니다."
이것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이에요.
선조와 신하들의 반응은 싸늘했어요.
"나라는 지금 태평한데, 왜 공연히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느냐"고 했어요.
일부 신하들은 이이를 "평지에 풍랑을 일으킨다"며 대놓고 비난했어요.
이이는 이듬해인 1584년, 49살에 사망했어요.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어요.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한 지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함락했어요.
9번 장원에 오른 천재가 마지막에 한 가장 중요한 말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는 자신의 경고가 옳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죽었어요.
그리고 죽은 사람이 옳았다는 진실은,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8년 뒤 증명됐어요.
회의에서 "이거 큰일 납니다"라고 경고했다가 비웃음당하고, 정확히 그 말대로 일이 터졌는데 그 자리에 자기는 없는 상황이에요.
이이는 그 상황의 주인공이에요.
그 경고가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임진왜란의 불길을 바라봤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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