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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04년, 켄닌지의 한 사미승이 절을 떠났어요.
그는 이후 50년간 일본에서 불교를 가장 격렬히 비판하는 학자가 됐어요.
하야시 라잔은 그해 스물두 살이었어요.
교토 켄닌지는 임제종, 그러니까 일본 선불교 명문 종파의 대표 사찰로, 오늘날로 치면 의학전문대학원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신동으로 불리던 사미승이 스스로 그 길을 포기한 거예요.
그는 절 문을 나서면서 후지와라 세이카를 찾아갔어요.
세이카는 당시 일본에 새롭게 들어온 학문인 주자학을 가르치던 학자였어요.
주자학이란 중국 송나라 때 완성된 유교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이 곧 우주의 도덕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이에요.
명문 의대를 다니다 철학 책 한 권에 꽂혀 자퇴해버린 청년처럼, 라잔은 안정된 미래를 등지고 새 학문에 인생을 걸었어요.
그리고 그 선택이 일본 역사를 바꿔놓았어요.
라잔이 평생 미워한 옷이 그의 평생 유니폼이 됐어요.
1607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라잔을 막부의 학자로 불렀어요.
도쿠가와 막부란 1603년부터 시작된 무사 정권으로, 전국의 다이묘(지방 영주)들을 중앙에서 통제하던 체제였어요.
새로운 시대를 사상으로 뒷받침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라잔이 그 자리에 낙점된 거예요.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당시 막부에는 "유학자"라는 공식 자리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라잔은 도슌(道春)이라는 법명을 받고, 삭발하고, 승려 신분으로 등록돼야 했어요.
불교를 버리러 절을 나온 사람이 취직을 하면서 다시 승려가 된 거예요.
더 황당한 건 이게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그는 그 모습으로 죽을 때까지 50년을 살았어요.
"나는 불교가 틀렸다"고 외치면서 매일 아침 승복을 입고 출근하는 삶.
그게 라잔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강요받은 현실이었어요.
에도 막부 250년의 법은 거의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승려였어요.
라잔이 만든 것들을 나열하면 기가 막혀요.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는 전국 다이묘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한 막부의 헌법 격 법령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국회 법률 전체를 혼자 초안 잡은 셈이에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금중병공가제법도는 천황과 귀족들이 막부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법이고, 조선과 주고받는 외교문서도 그가 썼어요.
막부 공식 의례의 절차까지 그가 설계했어요.
그는 4대 쇼군을 연달아 자문했어요.
라잔이 평생 강조한 사상은 신분 질서였어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켜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주장이었죠.
그런데 그 질서를 설계한 사람 자신은 유학자가 아닌 승려 신분으로 등록된 채 살아야 했어요.
라잔은 자기가 만든 이론의 가장 기묘한 예외였어요.
1657년 1월, 에도가 불탔어요. 라잔의 책장도 불탔어요. 4일 뒤, 그도 죽었어요.
메이레키 대화재는 에도 역사상 최악의 화재였어요.
에도 시가지의 절반이 사흘 만에 잿더미가 됐고, 에도성도 불길에 휩쓸렸어요.
지금으로 치면 수도 한복판이 통째로 불탄 거예요.
라잔은 그 불길 속에서 평생 수집하고 정리한 수만 권의 장서를 잃었어요.
절을 나와 주자학에 인생을 걸기로 했던 1604년부터, 4대 쇼군에게 법령을 써주던 긴 세월 동안 모아온 모든 기록이 한꺼번에 사라진 거예요.
그에게 책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었어요.
나흘이 지났어요.
75세의 라잔은 그날 세상을 떠났어요.
평생 찍어온 사진과 일기를 화재로 모두 잃은 노인이 며칠 만에 기력을 놓아버리듯, 그에게 그 책들은 자기 자신이었던 거예요.
그가 설계한 신분 질서는 일본에서 250년을 버텼어요.
하지만 그 질서를 만든 사람의 공식 신분은 끝끝내 승려 도슌이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질서를 설계한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의 자리는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면, 그건 아이러니일까요, 아니면 그게 원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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