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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류 최초로 산소를 시험관에 가둔 사람은, 그것을 산소라고 부르길 거부했어요.
1774년 8월 1일, 조셉 프리스틀리는 렌즈로 햇빛을 모아 수은재를 가열했어요.
수은재는 오늘날 산화수은이라 부르는 붉은 가루예요.
그러자 이상한 기체가 흘러나왔고, 그 안에 넣은 촛불은 더 밝게 타올랐고, 쥐는 보통 공기 속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어요.
이건 명백히 새로운 무언가였어요.
그런데 프리스틀리는 이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불렀어요.
플로지스톤은 당시 화학자들이 믿었던 가상의 물질로, 불이 탈 때 물체에서 빠져나온다고 여겼어요.
새 요리법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옛 요리책 카테고리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셈이에요.
프리스틀리는 자기가 발견한 것을 새로운 원소로 보지 않았어요.
기존 이론의 연장선,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로 해석한 거예요.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부아지에는, 그 결정적 실마리를 한 영국인 손님에게 저녁 식탁에서 받았어요.
1774년 10월, 프리스틀리는 파리를 방문해 앙투안 라부아지에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어요.
라부아지에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화학자였고, 그의 아내 마리안느는 실험을 곁에서 기록하는 실질적 공동 연구자였어요.
그 자리에서 프리스틀리는 자신의 새 기체 실험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줬어요.
라부아지에는 식탁에서 들은 그 이야기를 곧바로 실험실로 가져갔어요.
그리고 1777년, 프리스틀리가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 부른 그 기체에 '산소(oxygène)' 라는 이름을 붙이고, 플로지스톤 이론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냈어요.
자기가 개발한 레시피를 라이벌 셰프에게 자세히 알려줬더니, 그가 그 레시피로 미슐랭 별을 받아간 거예요.
근대 화학을 연 결정적 단서는 라부아지에가 스스로 찾아낸 게 아니었어요.
프리스틀리가 파리의 식탁 위에서 건네준 것이었어요.

산소를 처음 본 인간은, 자기 실험 노트가 불타는 것도 직접 봤어요.
1791년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 2주년이었어요.
버밍엄에서 그날을 기념하는 만찬이 열렸고, 프리스틀리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왕실과 영국 국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왔고, 군중의 분노는 이미 그를 향하고 있었어요.
사흘에 걸쳐 폭도들은 프리스틀리의 집, 교회, 실험실을 약탈하고 불태웠어요.
20년 넘게 쌓아온 논문, 실험 장비, 도서관이 전부 재가 됐어요.
프리스틀리는 가족을 데리고 변장한 채 야반도주해야 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노벨상 수상자가 SNS 정치 발언 한 번에 자기 연구실 전체를 불 지른 폭도들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에요.
산소를 분리해 인류에게 새 원소를 안겨준 사람이, '국가의 적' 으로 쫓겨난 거예요.
그것도 자기 나라에서요.

근대 화학의 문을 연 사람은, 끝내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어요.
1794년 프리스틀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시골 마을 노섬벌랜드로 망명했어요.
필라델피아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조용한 변경 마을이었어요.
거기서 그는 훗날 미국 3대 대통령이 되는 토머스 제퍼슨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여생을 보냈어요.
그런데 1800년, 그는 『플로지스톤 이론의 정립』이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이 틀렸고, 플로지스톤이 옳다는 주장을 다시 펼친 거예요.
자기가 직접 분리한 기체로 열린 새 화학 체계를,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에요.
자기가 만든 회사를 후배가 운영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정작 창업자는 옆 동네 카페에서 "저건 옳지 않아"라며 노트를 쓰는 모습과 같아요.
1804년 프리스틀리는 그 입장을 끝내 바꾸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발견한 기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있어요.
그는 그걸 알았을까요, 아니면 끝까지 몰랐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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