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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알하지젠은 자기 입으로 나일강을 길들이겠다고 했어요.
그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둘로 갈랐어요.
1010년경, 이라크 바스라 출신의 학자 알하지젠(이븐 알하이삼)은 이집트 카이로에 소문을 흘렸어요.
"나는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할 수 있다."
오늘로 치면 면접에서 "저는 뭐든 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친 셈이에요.
당시 카이로의 지배자는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알하킴이었어요.
파티마 왕조는 당시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이슬람 왕국이고, 알하킴은 그중에서도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통치자예요.
알하킴은 소문을 듣자마자 알하지젠을 카이로로 불러 딱 한마디를 건넸어요.
"그럼 지금 당장 해보세요."
알하지젠은 학문의 중심지로 가는 기회를 잡은 동시에, 자기 목에 칼을 겨눈 셈이 됐어요.

도서관에서 그가 알던 나일강은 종이 위의 선이었어요.
아스완에서 그는 살아 있는 짐승을 마주했어요.
알하킴의 명령으로 알하지젠은 남쪽 아스완까지 직접 답사를 떠났어요.
아스완은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지역으로, 훗날 20세기에 아스완 댐이 건설되는 바로 그 자리예요.
실제로 강 앞에 선 알하지젠은 말문이 막혔어요.
상상을 초월하는 수량, 험준한 절벽, 계절마다 방향을 바꾸는 흐름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어떤 공학 이론으로도 이 강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한눈에 보였어요.
사진으로만 보던 산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그 규모에 입이 닫히는 경험, 아마 한 번쯤 해봤을 거예요.
알하지젠이 아스완에서 느낀 건 정확히 그 감각이었어요.
그런데 그의 경우엔 그 순간이 죽음과 맞닿아 있었어요.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였어요.
자기 머리가 고장 났다고 모두를 속이는 것.
카이로로 돌아온 알하지젠은 실패를 자백하면 처형이 확실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는 미친 척을 택했어요.
횡설수설하고, 허공을 바라보고, 정상적인 대화를 거부하는 연기를 했어요.
알하킴은 그를 죽이는 대신 가택에 연금시켰어요.
그리고 1021년, 칼리프 알하킴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약 10년간 그 연금은 계속됐어요.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일이 그 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어요.
미친 척하던 죄수는 침묵 속에서 인류 과학사의 한 챕터를 쓰고 있었어요.
회식 자리에서 화장실에 숨어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그 시간에 인생작을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 것처럼요.

지금 당신이 이 글자를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천 년 전 한 남자가 미친 척하며 적어둔 한 문장의 결과예요.
연금된 방에서 알하지젠이 집필한 책은 『광학의 서』(키타브 알마나지르)예요.
총 7권 분량의 빛과 시각에 관한 연구서로, 10년의 침묵 속에서 완성된 작품이에요.
이 책이 뒤집은 건 무려 천 년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이에요.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진 통념은 이랬어요.
"눈에서 광선이 나가 사물에 닿으면서 우리가 사물을 본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황당하게 들리지만, 당시엔 아리스토텔레스와 유클리드까지 비슷한 주장을 지지했어요.
천 년 동안 누구도 실험으로 반박하지 않았어요.
알하지젠은 실험으로 이를 뒤집었어요.
그의 결론은 단순했어요.
"빛이 사물에서 반사되어 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 옵스큐라(핀홀 카메라)도 이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기록했어요.
어두운 방의 벽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으면, 구멍 맞은편 벽에 바깥 풍경이 거꾸로 맺히는 현상이에요.
오늘날 모든 카메라의 가장 기본 원리가 바로 이것이에요.
결국 알하지젠이 어두운 방에서 적어 내려간 원리들은 700년 뒤 뉴턴 광학의 토대가 됐어요.
미친 척하던 죄수가 현대 물리학의 출발점을 만든 셈이에요.
지금 당신 손에 들린 스마트폰 카메라가 빛을 포착하는 방식, 그 원리의 출발점에는 어두운 방 하나와 살아남으려 했던 남자 한 명이 있어요.
두려움에서 비롯된 침묵이 인류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됐다는 것, 이상하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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