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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94년 어느 날, 파리의 한 후작이 스위스 청년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내용은 단 하나였어요. "당신이 앞으로 발견할 모든 수학적 결과를 나에게만 보내줘."
기욤 드 로피탈은 파리 귀족이었어요.
수학을 좋아했지만 최첨단 연구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독특했어요.
직접 발견하는 대신, 발견자를 사버리기로 한 거예요.
상대는 요한 베르누이, 스위스 출신의 젊은 천재 수학자였어요.
로피탈은 그에게 연 300리브르를 제시했어요.
당시 파리 숙련 장인의 연봉 수준이었으니, 꽤 진지한 제안이었죠.
계약 조건은 이랬어요.
"당신의 발견을 나에게만 보낼 것, 다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말 것."
오늘날로 치면 CEO가 무명 작가에게 월급을 주고 원고를 받아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 구조예요.
그 책이 출간되자 유럽의 수학 교실이 바뀌었어요.
완벽한 데뷔였는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그 책의 핵심 내용이 그의 것이 아니었거든요.
1696년 로피탈이 펴낸 『무한소 분석』은 유럽 최초의 미적분 교과서였어요.
미적분학은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막 세상에 공개한 당시로선 완전히 새로운 수학이었어요.
곡선의 기울기와 넓이를 무한히 작은 단위로 쪼개 계산하는 방법을, 교과서 형태로 처음 정리한 책이에요.
책은 순식간에 유럽 대학의 표준 교재가 됐어요.
그런데 그 안에 담긴 핵심 정리들은 베르누이가 편지로 보내준 내용에서 거의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어요.
친구가 보내준 강의 노트를 정리해 자기 이름으로 베스트셀러 참고서를 낸 셈이에요.
오늘 한국 대학교 미적분 강의실에서 풀리는 그 정리는, 로피탈이 발견한 적이 없어요.
책 4장에 등장하는 핵심 정리가 있어요.
분수식에서 분자와 분모가 동시에 0이 되어버릴 때, 즉 0÷0 꼴이 나올 때 그 값을 구하는 방법이에요.
지금 전 세계 이공계 학생이 시험마다 쓰는 로피탈 정리가 바로 이거예요.
그런데 이 결과는 베르누이가 1694년 7월 22일에 쓴 편지에 이미 담겨 있던 거예요.
그는 발견 직후 계약대로 로피탈에게만 보냈어요.
그래서 로피탈이 그걸 책에 실었고, 결국 '로피탈의 정리'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회사 동료의 아이디어로 만든 보고서가 사장 이름으로 발표돼 업계 표준이 된 상황이에요.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이 경우엔 동료가 계약서에 직접 서명했다는 거예요.
베르누이는 돈을 받았고, 로피탈은 이름을 얻었어요.
베르누이는 평생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그를 증명한 편지가 발견된 건, 두 사람 모두 죽고 200년이 지난 뒤였어요.
1704년 로피탈이 세상을 떠나자 베르누이는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어요.
"그 정리는 내가 발견한 거야. 로피탈은 내 편지에서 가져간 것뿐이야."
하지만 학계는 그를 시기 많은 노학자로만 취급했어요.
그로부터 약 200년 뒤, 스위스 바젤 대학 도서관에서 두 사람의 왕복 편지가 발견됐어요.
날짜, 수식, 내용이 정확히 일치했어요.
베르누이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는 게 마침내 증명됐어요.
하지만 진실이 밝혀졌어도 정리의 이름은 바뀌지 않았어요.
지금도 모든 미적분 교과서에는 '로피탈 정리'라고 적혀 있어요.
진짜 작곡가가 200년 뒤에 밝혀져도 이미 굳어진 노래 제목은 바뀌지 않는 것처럼요.
300년이 지난 지금, 수억 명의 학생이 매년 시험에서 그 정리를 써요.
정작 이름은 발견하지 않은 사람의 것으로 남아 있고요.
수학의 역사에서 우리가 '발견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정말 발견한 사람인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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