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확률을 발견한 남자는 원래 목사가 될 운명이었어요.
1654년 스위스 바젤의 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야코프 베르누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신학자가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야코프를 바젤대학에 보내 신학과 철학을 공부시켰죠.
하지만 야코프는 밤마다 몰래 수학과 천문학 책을 펼쳤어요.
부모가 잠든 뒤에야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의대에 보냈더니 새벽마다 몰래 코딩을 배워 결국 개발자가 된 아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아요.
졸업 후 야코프는 가족의 반대를 정면으로 뚫고 수학자의 길을 택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훗날 "우연을 숫자로 다루는 학문"인 확률론을 만든 사람이 정작 자기 인생에서는 우연이 아닌 정면 거역을 택했다는 점이에요.
운명에 기댄 게 아니라, 직접 확률을 바꾼 사람이었던 거죠.

베르누이의 가장 사나운 적은 그가 직접 키운 동생이었어요.
야코프는 13살 어린 동생 요한 베르누이에게 수학을 직접 가르쳤어요.
처음에는 형제 사이의 협력이었죠.
그런데 1690년대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두 형제는 미적분 문제 풀이를 두고 학술지에서 서로를 공개적으로 비방하기 시작했어요.
미적분은 당시 수학의 가장 뜨거운 최전선이었는데, 거기서 형과 동생이 정면충돌한 거예요.
요한은 "형이 내 풀이를 도용했다"고 주장했고, 야코프는 동생을 "내 제자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어요.
오늘날로 치면 자기가 멘토링한 후배가 공개 포럼에서 자신을 표절범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이에요.
결국 야코프가 가장 공들여 키운 사람이 가장 큰 라이벌이 된 거예요.

베르누이는 동전을 무한히 던지면 앞면이 정확히 절반 나온다는 걸 증명했지만, 자기 책이 출간되는 건 보지 못했어요.
20년 넘게 집필한 책이 바로 《아르스 콘옉탄디》, 라틴어로 "추측의 기술"이라는 뜻이에요.
확률론의 기초가 된 책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 책의 핵심은 큰 수의 법칙이에요.
동전을 100번 던지면 앞면이 꼭 50번 나오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1만 번, 10만 번 던지다 보면 앞면 비율이 점점 1/2에 가까워진다는 거예요.
야코프는 이걸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하고 스스로 "황금 정리"라 이름 붙였어요.
그런데 1705년, 그는 책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어요.
결국 조카가 원고를 정리해 1713년에야 출간되었는데, 야코프가 죽고 정확히 8년이 지난 뒤였어요.
우연을 길들이는 법칙을 평생 연구한 사람이, 정작 자기 책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만큼은 통제할 수 없었던 거예요.

베르누이는 자기가 평생 사랑한 도형을 묘비에 새겨달라고 했지만, 석공은 다른 도형을 새겼어요.
야코프가 사랑한 건 로그 나선이었어요.
크기를 아무리 늘리거나 줄여도 모양이 똑같은 신기한 곡선으로, 달팽이 껍데기나 태풍 위성사진에서 보이는 바로 그 나선이에요.
야코프는 이 나선을 "경이로운 나선(spira mirabilis)"이라 불렀어요.
죽기 전 묘비에 로그 나선을 새기고 그 아래 라틴어 문구를 함께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Eadem mutata resurgo", 즉 "변해도 같은 모습으로 다시 일어선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바젤 대성당의 석공은 아르키메데스 나선을 새겨버렸어요.
아르키메데스 나선은 소용돌이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도는 평범한 나선으로, 로그 나선과는 전혀 달라요.
그리고 그 오류는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어요.
평생 정확성을 무기로 삼은 수학자의 마지막 메시지가, 다른 도형으로 영원히 잘못 새겨진 거예요.
"변해도 같은 모습으로 다시 일어선다"는 말 옆에, 정작 변해서는 안 될 도형이 바뀐 채 남겨진 셈이에요.
베르누이가 지금 그 묘비 앞에 선다면, 과연 그것도 확률의 범주 안에 있다고 웃어넘길 수 있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