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일러는 양쪽 눈을 잃은 뒤 17년 동안 평생 논문의 절반을 썼어요.
그것도 직접 쓴 게 아니라 받아쓰기로요.
1738년 무렵 오일러는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어요.
그리고 1771년, 백내장을 고치려다 수술이 실패하면서 남은 왼쪽 눈마저 어둠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 뒤 오일러에게 남은 것은 아들과 조수의 귀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오일러 본인이 회상하길, "시력을 잃자 오히려 산만함이 줄어서 집중이 더 잘된다"고 했어요.
시끄러운 카페에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끼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그 경험, 오일러는 실명으로 그걸 얻은 거예요.
그 결과는 숫자로 나와요.
죽기 전 17년 동안 발표한 논문 수는 평생 발표량의 거의 절반이에요.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빠르게, 더 많이 써낸 거예요.

오일러가 푼 것은 다리 일곱 개를 모두 건너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이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증명이었어요.
1736년, 프로이센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는 이런 퀴즈가 유행하고 있었어요.
강이 도시를 두 갈래로 가르고, 그 위에 다리가 일곱 개 놓여 있었어요.
퀴즈는 단순해요. 각 다리를 딱 한 번씩만 건너서 도시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을까요?
동네 골목을 같은 길 두 번 안 밟고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이 퀴즈는 꽤 많은 시민을 고민에 빠뜨렸어요.
오일러는 이 문제를 지도로 풀지 않았어요.
다리와 땅덩어리를 점과 선으로 추상화한 뒤, "각 지점에서 홀수 개의 선이 연결돼 있으면 한 번에 돌 수 없다"는 것을 수학으로 증명했어요.
오일러는 답을 찾은 게 아니라, 답이 없음을 증명해버린 거예요.
그리고 그 방식이 훗날 그래프 이론과 위상수학의 출발점이 됐어요.
그래프 이론은 점과 선의 연결 관계를 다루는 수학 분야이고, 위상수학은 도형의 크기나 각도가 아닌 연결 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불가능하다"는 증명이 새로운 학문 두 개를 열어젖힌 거예요.

서로 무관해 보이던 다섯 숫자가, 오일러의 한 줄 안에서 처음으로 한 가족이 됐어요.
1748년, 오일러는 e^(iπ)+1=0이라는 식을 내놓았어요.
이 한 줄에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상수, e, i, π, 1, 0이 모두 들어가 있어요.
후대 수학자들이 이 식을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이 다섯 숫자는 각각 전혀 다른 문제를 풀다 발견된 거예요.
e(자연상수)는 은행 이자나 인구처럼 계속 커지는 변화를 계산할 때 등장하고, π는 원의 둘레를 구하다 나타나요.
i(허수)는 "제곱하면 -1이 되는 수"인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기공학과 양자역학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숫자예요.
서로 다른 도시에서 자란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알고 보니 모두 한 가족이었다는 발견과 같아요.
수학 전체가 하나의 우주처럼 연결돼 있다는 걸 오일러가 처음으로 보여준 순간이에요.

오일러가 죽은 지 50년이 지나서도, 학술지에는 그의 새 논문이 계속 실렸어요.
오일러는 13명의 자녀를 뒀어요.
집이 늘 시끄러웠는데도, 무릎에 아기를 안은 채 공식을 머릿속으로 굴렸다는 일화가 전해져요.
주변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1783년 9월 18일, 오일러는 손자와 함께 차를 마시다 뇌졸중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하지만 그가 받아쓰기로 남겨둔 미발표 원고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어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지는 그 원고들을 정리해 이후 약 50년 동안 계속 새 논문으로 발표했어요.
좋아하던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매년 새 책이 서점에 깔리는 것과 같아요.
오일러가 평생 발표한 논문은 800편이 넘어요.
그리고 그 숫자는 그가 눈을 감은 뒤에도 한참을 계속 늘어났어요.
손자와의 그 마지막 차 한 잔, 그 순간에도 어딘가의 책상 위에는 그의 원고가 쌓여 있었을 테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