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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외침은 알몸으로 시작됐어요.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식민도시 시라쿠사(지금의 시칠리아)의 왕 히에론 2세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새 왕관을 금세공인에게 맡겼는데, 혹시 금 대신 은을 섞어 속인 건 아닐까 의심이 든 거예요.
왕은 당대 최고의 두뇌 아르키메데스를 불렀어요.
문제는 왕관을 녹이지 않고는 성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어요.
며칠 동안 고민하던 그가 공중목욕탕에 들어갔어요.
욕조에 몸을 담그자 물이 철철 넘쳤고, 바로 그 순간 번개처럼 답이 떠올랐어요.
부피가 같으면 물이 넘치는 양도 같다는 것, 즉 왕관과 같은 무게의 순금을 물에 담갔을 때 넘치는 물의 양을 비교하면 된다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말하는 부력의 원리예요. 물체가 물속에서 가볍게 느껴지는 건, 물이 그 물체를 밀어 올리는 힘 때문이라는 것.
그는 수건도 안 집고 그대로 거리로 뛰쳐나갔어요.
샤워하다가 갑자기 잊어버렸던 비밀번호가 떠올라 수건도 안 두르고 거실로 달려가는 그 느낌, 그게 맞아요.
알몸으로 시라쿠사 거리를 달리며 그는 외쳤어요. "유레카! 찾았다!"

로마 함대를 멈춰 세운 것은 군대가 아니라 70대 수학자 한 명이었어요.
기원전 214년, 지중해 패권을 두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싸우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 로마 장군 마르켈루스가 대군을 이끌고 시라쿠사를 포위했어요.
시라쿠사는 카르타고 편이었고, 로마 입장에서는 반드시 점령해야 할 거점이었어요.
그런데 성벽 안에 아르키메데스가 있었어요.
이미 70대였던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도시를 지키기 위해 직접 무기 설계에 나섰어요.
평생 책상 위 수학만 파던 사람이, 어느 날 동네가 침입당하자 스스로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가 만든 것들은 당시 기준으로 공상과학 수준이었어요.
거대한 투석기로 로마 배에 바위를 퍼붓는 건 기본이었고, 쇠갈고리로 배를 통째로 들어 올려 바다에 내동댕이치는 기계인 아르키메데스의 발톱까지 동원했어요.
심지어 거울로 햇빛을 한곳에 모아 배에 불을 붙이는 열선 무기도 설계했다는 기록이 전해져요.
결국 마르켈루스의 군대는 2년 동안 시라쿠사 성벽을 뚫지 못했어요.
순수 수학만 사랑하던 사람이 살상 무기를 설계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는 적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 도시와 자기 수학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지키려 했던 거예요.

도시가 무너지는 순간, 75세 노인의 관심사는 단 하나, 자기가 그린 원이었어요.
기원전 212년, 로마군이 마침내 시라쿠사 성벽을 넘었어요.
마르켈루스는 아르키메데스를 너무나 존경했기 때문에 특별 명령을 내렸어요. "그 노인만큼은 살려서 데려오라."
한 로마 병사가 그를 찾아냈을 때, 아르키메데스는 마당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문제를 풀고 있었어요.
병사가 "따라오라"고 명했을 때 그는 고개도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딱 한 마디를 했어요. "내 원을 밟지 마라."
라틴어로 "Noli turbare circulos meos"라고 전해지는 이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이에요.
집에 불이 났는데도 마지막 한 챕터를 읽고 나가겠다고 버티는 사람, 그것과 비슷한 집착이에요.
결국 분노한 병사의 칼에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도시를 함락시킨 군대 앞에서도 두려움보다 풀던 문제가 더 중요했던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용기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집착이라 불러요.
하지만 그에게는 그냥, 그게 삶의 전부였던 거예요.

도시를 구한 영웅의 묘비에는 무기가 아니라 도형 하나가 새겨져 있었어요.
아르키메데스는 살아생전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딱 하나로 꼽았어요.
투석기도, 발톱 기계도, 유레카 순간도 아니었어요.
그것은 아주 단순한 수학적 발견이에요.
구의 부피는 그 구를 딱 맞게 감싸는 원기둥 부피의 3분의 2예요.
오늘날엔 적분으로 금방 증명하지만, 당시엔 이 사실 하나를 증명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어요.
그는 자기 묘비에 그 구와 원기둥 도형을 새겨달라고 부탁했어요.
SNS 프로필에 직업이나 수상 경력 대신 가장 좋아하는 시 한 줄을 적어두는 사람처럼, 그에게는 그 도형이 자기 전부였어요.
발명이나 전쟁이 아니라, 순수한 아름다움 하나를 자기 이름 옆에 남기고 싶었던 거예요.
그로부터 137년 뒤, 로마의 정치가이자 웅변가 키케로가 시라쿠사를 방문했어요.
아르키메데스의 묘를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시라쿠사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위치를 몰랐어요.
결국 키케로가 직접 덤불 속을 헤치며 찾아다녔어요.
잡초와 덩굴로 뒤덮인 낡은 비석 위에는, 정말로 구와 원기둥 도형이 새겨져 있었어요.
자기 도시를 지키기 위해 2년을 싸운 사람이 후세에 남긴 것은 무기의 설계도가 아니라 수학 문제 하나였어요.
그렇게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던 도시에서, 137년 만에 적군 측 사람이 그 묘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끝으로 묘하게 어울리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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