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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근대 대수학을 만든 남자는 사실 수학자가 아니었어요.
그는 변호사였죠.
프랑수아 비에트는 1540년 프랑스 푸아투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앙리 4세의 추밀고문관으로 일했어요.
추밀고문관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직속 법률 자문 같은 역할이에요.
그게 그의 본업이었어요.
그런데 수학은 정치 의뢰가 뚝 끊기는 휴직기에 몰아서 했어요.
평일엔 회사 일 하고 주말에 취미로 코딩했더니, 훗날 그게 프로그래밍 언어의 표준이 된 셈이에요.
결국 그를 역사에 남긴 건 법정에서의 논변이 아니었어요. 책상 한쪽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채운 수학 노트였어요.

스페인 제국은 그 암호가 영원히 안전하다고 믿었어요. 비에트 한 사람이 풀기 전까지는.
1589년, 프랑스 왕실이 스페인 군의 비밀 서신을 가로챘어요.
그 안에는 약 500개의 기호로 이뤄진 복합 치환 암호가 담겨 있었어요.
복합 치환 암호란 단순히 A를 1로 바꾸는 게 아니라, 기호 하나하나가 문맥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방식이에요.
스페인은 이 체계가 절대 뚫릴 수 없다고 자신했어요.
그래서 해독을 의뢰받은 비에트는 몇 달에 걸쳐 혼자 분석했어요.
결국 해독에 성공했고, 프랑스는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군사 명령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게 됐어요.
회사 내부 채팅의 암호화 키를 외부인 한 명이 혼자 풀어서 모든 회의 내용을 엿듣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펜과 종이만으로요.

스페인 왕은 자신이 졌다는 사실보다, 비에트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어요.
펠리페 2세는 이렇게 확신했어요.
"이 암호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풀 수 없어. 저자는 분명 악마와 거래한 거야."
그래서 교황 식스토 5세에게 비에트가 흑마술을 사용했다는 정식 항의서를 보냈어요.
교황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시험에서 진 학생이 "쟤 컨닝했다"고 우기는 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 국가 차원에서 한 거예요.
비에트는 마법사가 아니었어요. 그냥 수학을 잘했을 뿐이에요.

오늘 중학생이 푸는 x와 y는 한 변호사가 400년 전에 처음 종이에 적은 글자였어요.
그 전까지 수학은 전부 문장으로 썼어요.
"어떤 수에 다른 수를 더하면 두 배가 된다"처럼요.
모든 레시피가 "소금 한 줌, 후추 약간"으로만 적혀 있다가 갑자기 "A=소금, B=후추" 같은 일반 표기가 생긴 거예요.
비에트는 1591년 『해석학 입문』을 펴냈어요.
원제는 라틴어로 In artem analyticem isagoge, 대수학을 일반 기호로 표현한 최초의 책이에요.
그는 모음 A, E, I를 미지수로, 자음 B, C, D를 이미 알려진 값으로 쓰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그는 이걸 "종족(species)의 논리"라고 불렀어요.
낯선 이름이지만 뜻은 단순해요. 개별 숫자가 아니라 숫자의 종류를 기호로 다룬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x + y = z 형태가 바로 이때 처음 등장한 거예요.
비에트 자신은 그냥 더 편리한 표기법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편의가 이후 400년 동안 전 세계 수학 교과서의 공통 언어가 됐어요.
수학사의 가장 큰 혁신이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퇴근 후에 수학을 한 변호사에게서 나왔다는 게 어쩌면 가장 놀라운 사실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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