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의 아버지는 원래 철학자가 아니라, 비극 경연장에 출품할 시를 쓰던 청년이었어요.
그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름 '플라톤'은 레슬링 코치가 붙여준 별명이에요.
어깨가 유달리 넓었거든요.
코치가 그리스어로 '넓은 사람'을 뜻하는 '플라톤'이라 불렀고, 그 별명이 평생을 따라다녔어요.
스무 살 전의 플라톤은 레슬링 선수이자 시인 지망생이었어요.
아테네 최대 연극 축제인 디오니시아 비극 경연에 출품할 시를 열심히 쓰고 있었죠.
오늘날로 치면, 영화감독을 꿈꾸며 각본을 쓰던 공대 지망생 같은 상황이에요.

경연장에 출품할 원고를 들고 나가던 스무 살 청년은, 그날 밤 그 원고를 난로에 던져 넣었어요.
기원전 407년경, 플라톤은 경연장으로 가는 길에 거리에서 한 노인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어요.
그 노인이 소크라테스였어요.
소크라테스는 오늘날로 치면 길거리 철학 토론가예요.
광장에 서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당신은 정말 그게 옳다고 알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논쟁을 벌이던 인물이었죠.
플라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 써둔 비극 원고를 전부 불에 태웠어요.
고대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철학자들의 생애』에 이 장면이 그대로 기록돼 있어요.
단 하루의 만남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꿨어요.
이후 8년 동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살았어요.
면접장 가는 길에 마주친 낯선 사람과 대화 한 번으로 전공을 바꾸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 대가는 비교할 수 없이 컸어요.

이상 국가를 꿈꾸던 철학자가 자신의 몸값을 은화로 계산당하고 있었어요.
기원전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세상을 떠났어요.
플라톤은 슬픔 속에서도 철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시칠리아 섬의 도시 시라쿠사로 향했어요.
거기에 디오니시오스 1세라는 참주가 있었어요.
참주란 선거 없이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독재 지배자예요.
오늘날로 치면, 플라톤은 그 독재자를 철학으로 교육하려 자문 컨설팅을 하러 찾아간 거예요.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어요.
격분한 참주는 플라톤을 배에 태워 아이기나 섬 노예 시장에서 팔아버렸어요.
낙찰 가격은 20므나. 은화 스무 묶음이었어요.
이상 국가를 설계하던 철학자가 경매대 위에 서 있었어요.
다행히 친구 안니케리스가 몸값을 치르고 그를 되샀어요.
하지만 이 경험이 플라톤에게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었어요. 권력과 철학 사이의 냉혹한 거리를 몸으로 배웠거든요.

한때 비극을 쓰던 남자는, 자신이 설계한 국가의 성문 앞에 시인 출입금지 팻말을 걸었어요.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세웠어요.
오늘날 '아카데미'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어요.
그리고 대표작 『국가(Politeia)』를 썼어요.
이 책은 이상적인 나라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다룬 철학 대화록이에요.
그런데 그 책의 제10권에서, 플라톤은 충격적인 선언을 해요.
"시인은 이상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
이유는 명확했어요. 시는 감정을 자극해 이성을 흐린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선언을 한 사람이 누구예요? 스무 살에 비극 경연 원고를 들고 경연장으로 향하던 바로 그 청년이에요.
전직 흡연자가 가장 강력한 금연법을 발의하는 것과 비슷해요.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단호했는지도 몰라요.
시가 얼마나 강력하게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스무 살의 플라톤이 불태운 건 원고만이 아니었어요.
그날 밤 그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을 태웠어요.
그리고 그 재 위에서 서양 철학이 자라났어요.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것을 포기한 순간, 그게 당신을 어디로 데려갔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