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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니콜라이 로바체프스키는 하마터면 카잔대에서 쫓겨날 뻔했던 학생이었어요.
1807년, 열다섯 살에 러시아 카잔대학에 입학한 그는 야간 소동, 음주, 규율 위반으로 퇴학 심사 대상에 올랐거든요.
오늘날로 치면 F학점에 징계 경고까지 받고 자퇴 직전까지 몰린 학생이요.
그를 구한 건 독일계 수학 교수 바르텔스(Bartels)였어요.
그는 훗날 수학의 황제로 불리는 가우스(Gauss)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는데, 말썽꾸러기 학생 안에서 뭔가를 봤어요.
"이 학생은 내보내면 안 된다"고 막아선 거죠.
그 뒤 이야기가 좀 황당해요.
퇴학 직전이었던 학생이 스물넷에 정교수가 됐고, 서른넷엔 카잔대 총장 자리에 앉았거든요.
19년 동안 그 학교를 이끌면서, 동시에 2000년 된 수학의 전제를 뒤집는 논문을 썼어요.

그는 유클리드가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한 최초의 수학자였어요.
초등학교 때 배운 거 기억하나요?
"삼각형 세 각의 합은 180도."
맞는 말이에요. 단, 평평한 종이 위에서 그린 삼각형 얘기예요.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는 이런 내용이에요.
"한 직선 밖의 한 점에서, 그 직선과 평행한 선은 딱 하나만 그을 수 있다."
유클리드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로, 2000년 넘게 모든 기하학의 기초가 된 공리들을 정리한 사람이에요.
그 공리를 2000년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너무 당연해 보여서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진리로 여겼거든요.
그런데 로바체프스키는 "왜 당연한데?"라고 물었어요.
1826년 2월 23일, 카잔대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발표해요.
"한 점에서 평행선을 여러 개 그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청중은 어리둥절했겠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어요.
1829년, 그는 교내 학술지 〈카잔 회보〉에 논문 《기하학의 원리》를 실었어요.
비유클리드 기하학, 즉 유클리드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기하학을 세계 최초로 체계화한 논문이었어요.
비유를 하나 들면 이래요.
지구본 위에 삼각형을 그리면, 세 각의 합이 180도를 넘어요.
휘어진 공간에서는 평평한 공간의 법칙이 안 통하거든요. 그가 상상한 게 바로 그런 세계였어요.

가우스는 편지에선 그를 천재라 불렀지만, 학계에선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어요.
당시 러시아 수학계의 실세는 오스트로그라드스키(Ostrogradsky)였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의 최고 수학자로, 러시아 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죠.
그가 로바체프스키 논문에 내린 공식 평가는 단 한 줄이었어요. "불성실하고 무가치하다."
1834년엔 잡지 〈조국의 아들〉에 익명 기고문이 실렸어요.
그 글은 로바체프스키를 "수학의 캐리커처"라고 비웃었어요.
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말이었죠.
그런데 독일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흘렀어요.
수학의 황제 가우스는 개인 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그는 일류의 정신을 가졌다."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가우스는 공개적으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자기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오래전에 생각했다가 발표를 미뤄온 상황이었거든요.
논란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건 그에게 득보다 실이었을 거예요.
회의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냈는데,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뒤에서만 "맞아"라고 하고 공개석상에서는 끝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
그게 로바체프스키가 평생 살았던 현실이었어요.
결국 1846년, 그는 총장직과 교수직에서 사실상 강제로 물러나게 됩니다.
공식 이유는 행정 문제였지만, 20년간 이어진 학문적 고립과 무관하지 않았어요.

그는 눈이 먼 채로, 아무도 믿지 않는 기하학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써내려갔어요.
말년은 가혹했어요.
1852년에 장남을 잃었고, 1855년엔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그리고 1856년 2월,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마지막 1년 동안, 그는 멈추지 않았어요.
조수를 불러 앉혀 놓고 말로 불러주면서, 프랑스어로 된 마지막 저작 《범기하학(Pangéométrie)》을 완성했거든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하학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한 거예요.
반전은 그가 죽고 나서 일어났어요.
사후 12년이 지난 1868년, 이탈리아 수학자 벨트라미(Beltrami)가 로바체프스키 기하학에 수학적 모순이 없음을 증명해요.
"이 사람이 맞았다"는 공식 선언이나 다름없었죠.
그리고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왔어요.
우주의 공간 자체가 실제로 휘어 있다는 내용이에요.
로바체프스키가 평생 상상하고 주장한 것이, 물리학으로 사실이 됐어요.
영국 수학자 클리퍼드(Clifford)는 그를 이렇게 불렀어요. "기하학의 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했을 때처럼, 로바체프스키도 세상의 상식을 뒤집었다는 의미예요.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맞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죽고 나서 우주가, 그의 손을 들어줬어요.
그가 눈 먼 채로 불러준 그 문장들이 결국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믿는 것들 중에도 혹시 아직 아무도 "왜 당연한데?"라고 묻지 않은 것이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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