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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소피 제르맹의 부모는 딸의 수학책을 빼앗으면 끝날 줄 알았어요.
잉크가 얼어붙은 책상에서 담요를 두른 13살 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1789년, 파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들끓었어요.
거리에 폭동이 번지자 중산층 가정은 딸들을 집 안에 가뒀어요.
소피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게 아버지 서재에 갇혀 지내던 소피가 우연히 아르키메데스 이야기를 읽게 됐어요.
아르키메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데, 기원전 212년 로마 군대가 시라쿠사(지금의 시칠리아)를 침략했을 때 바닥에 도형을 그리다 병사의 칼에 쓰러진 인물이에요.
죽는 순간에도 도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는 그 이야기가 13살 소피를 완전히 사로잡았어요.
그래서 소피는 수학을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부모는 공부를 막으려고 밤마다 촛불을 치우고, 옷을 감추고, 난로를 꺼버렸어요.
하지만 어느 날 새벽, 부모가 발견한 건 담요를 두르고 꽁꽁 얼어붙은 잉크통 앞에 앉아 있는 딸이었어요.
게임기를 압수당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막을수록 결심은 굳어졌어요.
결국 부모도 포기했어요.

라그랑주는 자기 학생 중 가장 뛰어난 답안을 쓴 르블랑 군을 직접 만나러 갔어요.
그리고 18살 여성을 마주했어요.
1794년, 파리에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설립됐어요.
당시 유럽 최고의 이공계 학교였지만 여성은 입학이 금지돼 있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합격증을 손에 쥐고도 캠퍼스에 발을 못 들이는 상황이에요.
소피는 방법을 찾았어요.
학교를 중퇴한 남학생 앙투안 르블랑의 이름을 빌려 강의 노트를 받고, 그 이름으로 과제를 제출했어요.
익명 계정으로 글을 올리는 것처럼, 신원을 완전히 숨긴 채로요.
그 보고서를 받아든 교수가 바로 라그랑주였어요.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라그랑주는 이 르블랑 군의 답안이 너무 뛰어나서 직접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들통날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라그랑주는 여성이라는 사실에 황당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소피의 능력을 인정하고 첫 번째 멘토가 됐어요.
들통난 순간이,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된 거예요.

가우스는 자신을 점령군에서 구해준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충격에 빠졌어요.
3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르블랑 군이, 사실은 파리의 한 여성이었어요.
1804년, 소피는 여전히 'M. 르블랑'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가우스는 정수론(수의 성질과 규칙을 연구하는 수학 분야)에서 당대 독보적인 학자였어요.
소피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편지에 담았어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특정 형태의 방정식을 만족하는 자연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인데, 그 당시 이미 150년째 아무도 증명하지 못한 수학 난제였어요.
소피는 여기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고, 가우스는 르블랑 군을 탁월한 동료로 여겼어요.
그런데 1806년, 나폴레옹 군대가 가우스가 살던 브라운슈바이크(독일 북부 도시)를 점령했어요.
소피는 친분이 있던 프랑스 장군 페르네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가우스의 안전을 부탁했어요.
장군은 요청을 들어줬고, 가우스에게 자신을 걱정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어요.
그제야 가우스는 르블랑이 파리의 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가우스가 소피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었어요.
"편견과 싸우며 가장 어려운 학문에 들어선 그녀의 용기는 가장 비범한 것입니다."
3년간 수학 편지만 주고받던 상대가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가우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소피 제르맹의 사망진단서에는 직업란이 비어 있었어요.
수학자라는 단어 대신 그곳에 적힌 것은 "재산소유자(rentier)"였어요.
1816년, 소피는 마침내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대상을 받았어요.
진동하는 금속판이 어떤 패턴으로 흔들리는지를 수학으로 설명한 연구로, 여성이 이 상을 받은 건 그녀가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상을 받고도 달라진 건 없었어요.
아카데미 회의에 참석할 권리는 끝까지 주어지지 않았어요.
문 앞에서 실력을 증명해도, 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어요.
1831년, 소피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무렵, 가우스의 추천으로 괴팅겐 대학이 소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기로 결정했어요.
하지만 학위 결정이 내려졌을 때, 소피는 이미 없었어요.
평생 가명으로 싸워 실력을 증명했는데, 마지막 서류에는 직업이 기록되지 않았어요.
가장 늦게 도착한 학위는 받을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도 우리는 지금 그 이름을 알고 있잖아요. 그게 충분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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