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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의 경계를 허문 남자가, 12살에 교실 문 앞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1942년, 알제리 엘비아르. 자크 데리다는 열두 살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학교 문이 그에게 닫혀버렸어요.
프랑스 비시 정권이 반유대법을 식민지 알제리에도 적용하면서 유대인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은 거예요. 비시 정권은 나치 독일에 협력한 프랑스 임시 정부예요.
유대인 전용 임시 학교가 생겼지만, 데리다는 거기도 가지 않았어요.
그냥 1년을 학교 없이 보냈어요.
그 시절 그의 꿈은 프로 축구 선수였어요. 철학자가 아니라.
그런데 훗날 데리다는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문" 철학자가 됐어요.
어떤 텍스트에든 고정된 중심은 없다고, 경계 바깥으로 밀려난 것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 사람이요.
그런 그의 인생 첫 기억이, 교실 문 바깥으로 밀려난 경험이었다는 게 묘하죠.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은 열두 살 아이.
그 아이가 자라서 "소속된다는 게 무엇인가"를 평생 묻는 철학자가 됐어요.

구조주의를 미국에 소개하자고 모인 학회에서, 36살의 무명 학자가 구조주의의 사망 선고를 읽어 내렸어요.
1966년 10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큰 학회가 열렸어요.
구조주의를 미국 학자들에게 처음 소개하려는 자리였어요.
구조주의란, 언어든 신화든 사회든 모든 것에는 깊은 '구조'가 있고 그 구조에는 반드시 '중심'이 있다는 사상이에요.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가장 세련된 지적 흐름이었어요.
데리다는 그 자리에 초청받은 무명의 프랑스 철학자였어요.
하지만 발표를 시작하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해졌어요.
제목은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였는데, 결론은 이거였어요.
"중심은 없다."
구조주의는 모든 구조에 중심이 있다고 가정해요.
그런데 데리다가 "그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선언한 거예요.
새 레스토랑 개업식에 초청받은 셰프가 마이크를 잡고 "이 요리법은 전부 잘못됐어요"라고 말한 상황이에요.
결국 구조주의를 미국에 소개하려던 학회가, 구조주의의 장례식이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해체주의의 시대가 열렸어요.
해체주의란, 텍스트나 사상 안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진 전제들'을 뒤집어 그 균열을 드러내는 철학적 사유예요.

1992년 타임스지에 실린 공개 서한의 결론은 충격적이었어요. 데리다가 받으려는 명예박사 학위를 막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케임브리지 대학이 데리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겠다고 발표하자, 전 세계 18명의 철학 교수들이 타임스에 공개 서한을 보냈어요.
내용은 단호했어요.
"데리다의 작업은 철학이 아니다." 논리도 명료함도 없다는 거였어요.
결국 케임브리지에서는 교수회 표결까지 열렸어요.
찬성 336표, 반대 204표.
통과는 됐지만, 명예박사 수여에 이런 표결이 필요했던 건 케임브리지 700년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어요.
반대 서한 자체가, 데리다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증거였어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철학자라면 18명이 모여 공개 서한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너무 성공했기 때문에, 정통 철학계가 "저건 철학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야 했던 거예요.
어떤 요리사가 너무 유명해져서 다른 요리사들이 공식 서한으로 "저건 요리가 아니에요"라고 써야 했던 상황.
그게 오히려 그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역설이었어요.

평생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고 가르친 철학자가, 죽기 두 달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놀랍도록 단순했어요.
2004년, 데리다는 췌장암 투병 중이었어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아직 사는 법도, 죽는 법도 배우지 못했어요."
프랑스어 원문은 "Je n'ai jamais appris à vivre", 직역하면 "나는 한 번도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예요.
그런데 이 문장,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그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 의 첫 줄이에요. 데리다는 죽기 직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생 화두로 되돌아온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체념이라고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달리 보면, 이건 해체주의자로서 가장 일관된 발언이에요.
모든 텍스트에 고정된 의미가 없다고 평생 가르친 사람이, 결국 자기 자신도 고정된 의미로 읽히길 거부한 거예요.
해체주의자가 가장 정직하게 해체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어요.
교실 밖으로 쫓겨난 그 열두 살부터, 죽기 두 달 전까지.
"나는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말은, 어쩌면 완성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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