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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의 첫 실험실은 학교가 아니라, 비에 쓸려나가는 베릭셔의 밭이었어요.
1749년, 제임스 허턴은 네덜란드 라이덴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는 진료실을 단 한 번도 열지 않았어요.
1754년, 허턴은 아버지가 물려준 스코틀랜드 남동쪽 슬리하우스 농장으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14년 동안 직접 밭을 갈았어요.
의사가 농부가 된 거예요.
그런데 농사를 짓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비가 올 때마다 밭의 흙이 트위드 강으로 조금씩 쓸려 내려갔거든요.
비 온 다음 날 주차장 모서리에서 흙먼지가 도로로 흘러내리는 걸 본 적 있잖아요. 바로 그 장면이에요.
허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이대로라면 땅은 결국 사라진다." 그러면 사라진 땅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리고 그게 무한히 반복된다면, 지구는 얼마나 오래된 걸까요.
그날 배 위의 세 남자가 본 것은 돌 몇 덩이가 아니라, 성경이 허락한 6천 년이 단번에 사라지는 장면이었어요.
1788년 6월, 허턴은 수학자 존 플레이페어와 실험과학자 제임스 홀 경을 작은 보트에 태웠어요.
목적지는 에든버러 남동쪽 해안, 시카 포인트(Siccar Point)라는 절벽이었어요.
거기에는 이상한 지층이 있었어요.
수직으로 곧게 선 회색 판암 위에, 수평으로 눕혀진 붉은 사암이 얹혀 있었거든요.
이걸 각부정합(angular unconformity)이라고 해요.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지층이 전혀 다른 각도로 맞붙어 있는 경계면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 중에 벽을 뜯었는데, 30년 된 배관 위에 100년 된 기초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쌓여 있는 걸 발견한 거예요.
한 벽에 두 시대가 교차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제임스 어셔 주교의 계산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어셔 주교는 성경을 분석해 "지구는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창조되었다"고 계산해 두었거든요.
그게 6천 년짜리 지구예요.
그런데 허턴이 그 절벽 앞에서 말했어요.
"이 경계선 하나 사이에, 지구가 한번 솟고 무너지고 다시 쌓인 시간이 들어있어요."
6천 년이 아니라 수억 년의 흔적이, 3층짜리 돌벽 하나에 새겨져 있다는 말이었어요.
그 순간을 플레이페어는 나중에 이렇게 썼어요.
"시간의 심연을 들여다보자 머리가 어지러웠다(The mind seemed to grow giddy by looking so far into the abyss of time)."
배 위에 서 있던 세 사람 모두 그날 잠시 말을 잃었어요.
지질학의 아버지에게 연구비를 댄 것은 왕립학회도, 귀족도 아닌, 에든버러 집집마다 쌓인 굴뚝의 검댕이었어요.
1750년대, 허턴은 친구 제임스 데이비와 함께 염화암모늄(sal ammoniac)을 석탄 그을음에서 추출하는 공정을 개발했어요.
염화암모늄은 당시 금속 세공과 의약에 꼭 필요한 흰 결정인데, 허턴이 영국 최초로 이걸 상업화한 거예요.
특허를 낸 것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에든버러 공장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고, 그 수익이 단단히 쌓였어요.
결국 허턴은 1768년 농사를 완전히 접고 에든버러로 이사해, 생계 걱정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직장에 다니면서 부업 수익으로 연구실을 차린 사람과 같아요.
근대 지질학의 토대는 순수 학문이 아니라, 도시 굴뚝에서 긁어낸 검댕을 팔아 스스로 확보한 후원금이었어요.
에든버러로 옮긴 허턴 주변에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국부론을 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증기기관을 개량한 발명가 제임스 와트, 이산화탄소를 발견한 화학자 조지프 블랙과 함께 매주 오이스터 클럽(Oyster Club)이라는 지식인 저녁 모임을 열었거든요.
굴뚝 검댕이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한 자리를 마련해 준 셈이에요.
지구가 무한하다고 선언한 문장은, 정작 독자들에게 도달하는 데에만 14년이 걸렸어요.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저자의 문장이었죠.
1788년, 허턴은 왕립학회에 논문 '지구의 이론(Theory of the Earth)'을 발표했어요.
1795년에는 같은 제목의 두 권짜리 확장본도 출간했어요.
문제는 그 책을 아무도 읽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의 문장은 같은 시대 독자들조차 "해독이 필요하다"고 불평할 만큼 문법이 뒤틀리고 문단이 길었어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동료가 파워포인트 글씨를 너무 작게 써서 회의에서 묻히는 상황과 정확히 같아요.
1797년 허턴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이론은 주류 과학계에서 거의 인용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카 포인트에 함께 갔던 존 플레이페어가 1802년 '허턴 이론의 예시(Illustrations of the Huttonian Theory)'를 펴냈어요.
허턴의 논지를 평이한 문장으로 다시 풀어 쓴 책이었어요.
그제야 과학계가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콘텐츠가 아니라 전달 방식이 수십 년을 집어삼킨 거예요.
허턴이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어요.
"지구의 역사에는 시작의 흔적도, 끝의 조짐도 없다(no vestige of a beginning, no prospect of an end)."
그 선언이 세상에 도착하는 데 필요했던 건 천재의 통찰이 아니라, 친구의 번역이었어요.
우리가 오늘 당연하게 아는 '수십억 년 된 지구'는 허턴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요.
그 절벽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의사 면허를 가진 농부였고, 그의 등을 민 건 도시의 굴뚝 연기였어요.
당신이 지금 상식으로 알고 있는 '오래된 지구'는, 비에 쓸려가는 밭을 바라보던 한 남자의 시선에서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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