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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의 이름은 수학 교과서 색인 어디에나 있지만, 그의 얼굴은 2009년까지 단 한 장도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았어요.
아드리앙마리 르장드르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르장드르 다항식·르장드르 변환은 물리학과 공대생이면 한 번쯤 마주치는 수식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의 실제 얼굴은 200년 가까이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교과서마다 실렸던 '르장드르 초상화'는 사실 혁명기 정치인 루이 르장드르의 그림이었어요.
같은 성씨를 가진,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2009년, 미시간대 피터 듀런 교수가 수학 저널 Notices of the AMS에 논문 한 편을 기고하면서 이 사실이 확정됐어요.
회사 연혁 벽에 내 사진 대신 동명이인 사진이 20년째 걸려 있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거예요.
실제로 남아 있는 르장드르의 유일한 실물 묘사는 1820년 보이이가 그린 작은 수채 캐리커처 한 장뿐이에요.
정면 초상도 아닌, 옆모습을 간략하게 스케치한 그림이에요.
자기 이름이 붙은 수식이 교과서마다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이, 200년 동안 틀린 사진으로 유통됐어요.
이상한 일이지만, 르장드르의 삶 전체가 사실 이런 식이었어요.

수학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우선권 분쟁의 피해자는 늘 르장드르였어요.
1805년, 르장드르는 『혜성의 궤도 결정에 관한 새로운 방법』이라는 책의 부록에서 최소제곱법을 세상에 처음 발표했어요.
최소제곱법이란 관측값의 오차를 제곱해서 더한 값을 가장 작게 만드는 방식으로 최선의 추정치를 구하는 기법이에요.
오늘날 통계학과 머신러닝의 기초 중 기초예요.
그런데 4년 뒤인 1809년, 독일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자기 책에 이런 말을 써넣었어요.
"나는 이미 1795년부터 이 방법을 써왔다."
르장드르가 발표하기 10년 전부터 자기가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에요.
르장드르는 편지로 격렬하게 항의했어요.
하지만 가우스는 1795년에 썼다는 노트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어요.
내가 먼저 기획서를 냈는데, 선배가 "그거 나 3년 전부터 노트에 적어뒀어"라고 말하면서 그 노트는 안 보여주는 상황이에요.
결국 역사는 이 방법을 '가우스-마르코프 정리'로 기억했어요.
먼저 인쇄한 사람은 르장드르인데, 교과서는 가우스를 앞세워요.
그리고 이건 르장드르 인생에서 딱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에요.

일생의 저작이 출간되자마자 낡아버린 학자가, 자신을 추월한 청년을 학계에 직접 소개했어요.
르장드르는 타원적분이라는 주제를 40년 넘게 파고들었어요.
타원적분이란, 타원의 둘레 길이처럼 sin이나 cos 같은 단순한 함수로는 깔끔하게 답이 안 나오는 복잡한 계산이에요.
그는 이 주제를 집대성해 1825년에서 1828년 사이에 세 권짜리 『타원함수론』을 출간했어요.
책이 나온 직후, 노르웨이의 청년 닐스 헨리크 아벨이 등장했어요.
당시 나이 스물둘이었어요.
아벨은 르장드르가 40년간 쌓아온 접근법 자체를 뒤집어버렸어요.
'타원적분'이 아니라 '타원함수'라는 더 근본적인 틀로 문제를 다시 세운 거예요.
독일의 카를 야코비도 같은 방향에서 연구를 발표했어요.
르장드르의 평생 연구는 하루아침에 구시대의 방법이 됐어요.
평생 정리한 레시피 책을 출간한 날, 옆집 대학생이 완전히 다른 조리법으로 같은 요리를 더 맛있게 만들어버린 것과 같아요.
그런데 르장드르는 질투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아벨과 야코비를 프랑스 과학원에 직접 추천하고 학계에 소개했어요.
그의 편지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어요.
"청년들이 나를 추월한 것이 기쁘다."
자기 연구가 낡아버렸다는 걸 알면서,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에요.

그의 이름은 오늘도 물리학 시험지에 등장하지만, 정작 그는 투표용지 한 장 때문에 노년의 연금을 잃었어요.
1824년, 프랑스는 왕정복고 시기였어요.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왕가가 다시 권력을 잡은 때예요.
당시 과학원은 회원들에게 정부가 지정한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압력을 넣었어요.
르장드르는 거부했어요.
그러자 정부는 즉시 그가 받던 연금을 삭감하고 중단시켰어요.
이미 혁명기를 거치면서 한 번 재산을 잃었던 노학자에게, 연금은 생계 그 자체였어요.
결국 르장드르는 1833년, 파리에서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어요.
르장드르 다항식, 르장드르 변환, 르장드르 기호처럼 물리학·경제학·수론의 기초 도구들에 자기 이름이 새겨진 인물이, 죽을 때는 난방비를 걱정해야 했어요.
그의 이름은 지금도 대학 교재 어딘가에 살아 있어요.
그게 르장드르에게 위로가 됐을지, 아니면 또 다른 아이러니였을지는 알 수 없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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