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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푸리에는 스물여섯에 두 번 사형 명단에 올랐어요.
수학 논문 한 편 쓰기도 전이었죠.
9살에 부모를 모두 잃은 푸리에는 오세르, 프랑스 부르고뉴의 작은 도시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자랐어요.
그곳에서 수학을 배웠고, 숫자에 천재적인 감각을 보였어요.
그런데 그의 삶에 프랑스 혁명이 끼어들었죠.
1794년,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가 체포됐어요.
로베스피에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수천 명을 단두대에 보낸 공포정치의 주인공이에요.
단두대 직전까지 갔는데, 바로 그 시점에 로베스피에르가 먼저 처형당하면서 기적적으로 풀려났어요.
회사 파벌 싸움에서 줄을 잘못 섰는데 그 줄의 리더가 갑자기 숙청되면서 오히려 내가 살아남은 상황, 딱 그거예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반동 정국에서 이번엔 로베스피에르 편이었다는 이유로 또 체포됐어요.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해서 한 번, 로베스피에르 편이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두 번 다 죽을 뻔했는데, 두 번 다 운으로 살아났어요.
장차 온실효과를 발견할 수학자는 그렇게, 수학책을 펴기도 전에 목숨을 두 번 걸었어요.

푸리에가 수학자에서 물리학자로 바뀐 장소는 파리의 책상이 아니라 카이로의 모래바닥이었어요.
그것도 나폴레옹 덕분에요.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는 병사뿐 아니라 수학자, 천문학자, 화가 167명이 함께 탔어요.
서른 살의 푸리에도 그 명단에 있었어요.
나폴레옹은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이집트 문명 전체를 연구하고 기록하려 했거든요.
현지에 이집트 학술원을 세웠어요.
오늘날로 치면 전쟁 중에 연구 기관을 만들어 문명을 기록하려 한 거예요.
푸리에는 그 학술원의 간사, 실무 총책임자가 됐어요.
3년간 유물을 측량하고 사막의 열기를 기록했어요.
그 이집트 연구를 집대성한 『이집트지』, 당대 최대 규모의 고고학 도감 편집에도 참여했어요.
그런데 진짜 수확은 따로 있었어요.
나폴레옹에겐 이집트 원정이 군사적 실패였어요.
하지만 푸리에에겐 그 사막이 '열'이라는 평생의 주제를 발견한 실험실이었어요.
회사 프로젝트가 완전히 망했는데 그 실패 여행에서 만난 계기가 커리어 전체를 바꿔놓은 경우, 비슷한 이야기예요.

당신이 오늘 들은 음악, 본 사진, 찍은 CT는 모두 라그랑주가 "틀렸다"고 한 논문에서 출발했어요.
1807년 푸리에는 '고체 내부에서 열이 어떻게 퍼지는가'를 수학으로 푼 논문을 프랑스 과학원에 냈어요.
심사자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 라그랑주와 라플라스였어요.
두 사람은 논문의 핵심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 핵심이 뭐냐면, "세상의 모든 파동을 단순한 사인과 코사인의 조합으로 분해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예요.
쉽게 말하면, 어떤 복잡한 소리든 순수한 음파들의 합으로 쪼갤 수 있다는 거예요.
당대 최고 권위자들은 "그럴 리 없다"고 했고, 논문은 출판되지 못한 채 15년을 보냈어요.
1822년, 푸리에는 직접 책으로 냈어요.
『열의 해석적 이론』이라는 이름으로요.
이 책이 담은 아이디어, '푸리에 변환'은 오늘날 JPEG 사진 압축, MP3 음악 압축, CT 촬영 이미지 처리 모두의 기반이 됐어요.
사내 리뷰에서 임원들이 15년간 "말이 안 된다"며 막았던 제안서가 결국 전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기술의 원형이 된 상황이에요.
당대 최고 권위자 두 명이 함께 틀린 거예요.
그것도 200년이 지나서야 모든 사람이 그 결과를 매일 쓰는 형태로요.

지구 온난화를 인류 최초로 경고한 남자는, 이불 세 겹을 덮은 채 과열된 방에서 쓰러졌어요.
1824년 푸리에는 '지구 대기가 열을 가두어 행성의 온도를 올린다'는 논문을 발표했어요.
쉽게 말하면, 지구가 유리온실처럼 태양열을 안에 가두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는 거예요.
인류 최초의 온실효과 논증이었어요.
그런데 이집트에서 얻은 건강 이상 때문인지, 푸리에는 평생 추위를 병적으로 두려워했어요.
한여름에도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방을 숨막힐 정도로 과열시켜 살았어요.
그의 방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을 거예요.
결국 1830년 5월, 과열된 파리 아파트의 계단에서 쓰러져 사망했어요.
지구가 왜 뜨거워지는지를 처음 계산한 남자가, 정작 자신의 방을 누구보다 뜨겁게 만들다가 그 방에서 생을 마감한 거예요.
지구 온난화를 경고한 사람이 가장 더운 방에서 살다 죽었다는 이 이야기, 역설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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