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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의 해석학은 세미나실이 아니라, 햇빛이 차단된 22살 청년의 병실에서 시작됐어요.
1922년, 소아마비(폴리오)가 독일 마르부르크를 덮쳤어요.
소아마비는 척수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로, 당시에는 치료제도 백신도 없었어요.
걸리면 격리된 방 안에서 몸과 함께 시간을 버텨야 했어요.
청년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도 그 방에 던져졌어요.
약 9개월 동안 만날 수 있는 사람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어요.
코로나로 몇 달간 방에 갇혀 본 적 있다면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에요.
외부가 사라진 공간에서 그가 붙잡은 건 그리스어 사전과 고전들이었어요.
플라톤의 대화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그리고 당시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강의하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원고들.
하이데거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질문한 철학자예요. 가다머는 그의 사상에 완전히 사로잡혔어요.
병실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물었어요.
"2천 년 전 그리스인이 쓴 문장이 지금 여기 이 병실에서 나에게 말을 건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물음이 평생을 따라다니게 됐어요.
해석학이란 텍스트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하지만 가다머는 기존 해석학과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어요.
"규칙을 따르면 이해할 수 있다"는 전통적 답을 넘어서, 그는 '이해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기 시작했어요.

그는 저항하지도 않았고, 가담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오해의 시대에, 한 문단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남았어요.
1930년대 독일은 나치(국가사회주의) 체제 아래 공적 제도를 하나씩 장악해 갔어요.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교수직을 유지하려면 나치가 관리하는 교사 조직, 국가사회주의교원연맹(NSLB)에 이름을 올려야 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특정 정치 단체 명부에 서명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가다머는 나치당(NSDAP) 자체에는 가입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교원연맹에는 서명했고, 1938년경 라이프치히 대학 정교수가 됐어요.
협력도 아니고, 순수한 침묵도 아닌 어떤 중간 지점.
회사 단톡방에 정치 글이 올라올 때 누르지도, 반대하지도 않고 조용히 읽씹하는 동료의 자리와 비슷해요.
그게 비겁인지 생존인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지점이에요.
그가 평생 연구한 것은 '이해'였어요.
서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진짜로 소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모든 것을 하나로 강요하던 체제 안에서, 그는 이해 대신 침묵을 택했어요.
'이해의 철학자'가 이해를 포기한 시간이 있었다는 모순, 그게 이 사람의 진짜 이야기예요.

그는 나치의 강의실에서 걸어 나오자마자, 소련의 총장실 의자에 앉아야 했어요.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 동부는 소련군이 점령했어요.
라이프치히도 소련 점령 지역 안에 있었어요.
소련은 대학을 재건하려 했지만, 나치에 연루되지 않은 교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가다머는 상대적으로 '덜 연루된' 교수로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1946년,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 총장(Rektor)으로 선출됐어요.
폭격으로 건물 절반이 무너진 캠퍼스를 다시 세우는 책임자 자리였어요.
아이러니가 짙어요.
하나의 독재 아래서 침묵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이번엔 또 다른 독재의 행정 수장이 된 거예요.
전 직장이 망해 간신히 살아남았더니, 새 경영진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또 목을 조여 오는 이직자의 기분이랄까요.
소련의 통제는 점점 강해졌어요.
커리큘럼, 교수 임용, 연구 방향까지 이념에 맞춰 통제하려 했어요.
가다머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서독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두 번의 체제, 두 번의 탈출.
그의 '이해의 철학'은 그렇게 두 독재를 몸으로 통과하며 단련됐어요.

평생 대화를 연구한 철학자가 가장 공개된 자리에서 배운 것은, 대화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가다머의 대표작 『진리와 방법』이 나온 건 1960년이에요.
그의 나이 60세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 은퇴 직전에 생애 대표작을 낸 셈이에요.
이 책에서 그는 '지평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어요.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텍스트를 매개로 진짜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물이 경계에서 스며들듯, 서로의 '지평'이 만나 함께 넓어진다는 거예요.
그는 102세까지 살았어요.
긴 삶의 후반부인 1981년, 파리 괴테 연구소에서 그는 자신보다 30살 어린 철학자 자크 데리다와 공개 토론을 벌였어요.
데리다는 해체주의의 기수로, 텍스트에는 고정된 의미가 없고 이해보다 오해가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었어요.
가다머의 해석학과 정반대를 가리키는 사상이에요.
가다머는 진심을 다해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데리다는 그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어요.
비판도 아니고, 동의도 아니고, 그냥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 철학자는 같은 공간에 앉아 서로를 관통하지 못한 채 각자의 세계에 머물렀어요.
철학사가들은 그 만남을 "개념 없는 만남"이라고 불러요.
진심으로 준비해 말을 걸었는데 상대가 화면만 보며 대답하지 않을 때, 그 5초 사이에 관계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처럼요.
그런데 가다머는 대화 가능성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어요.
데리다가 답하지 않은 그 침묵조차, 대화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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