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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형의 시신을 본 그날, 스물다섯 청년은 평생 출세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그 결심을 57년간 지켰어요.
1706년, 이익의 형 이잠은 조선 정계를 장악하던 노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어요.
노론은 당시 왕 주변을 둘러싼 가장 강력한 정치 파벌이었어요.
결국 이잠은 곤장 18대를 맞고 감옥에서 숨졌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래요.
회사 내부 비리를 공개 고발한 직원이 목숨까지 잃은 거예요.
그 동생이 평생 그 회사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거고요.
그런데 당시 조선에서 과거를 안 본다는 건 단순한 포기가 아니었어요.
사대부에게 과거는 가문의 존재 이유였어요.
과거를 포기한다는 건 가문 멸절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하지만 이익은 공부를 그만두기는커녕 더 깊이 파고들었어요.
분노가 그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평생 학자로 만든 거예요.

권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시골집에서, 조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한 권이 천천히 쓰이고 있었어요.
이익은 경기도 안산의 첨성리라는 작은 마을로 내려갔어요.
거기서 닭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았어요.
한양 권력의 중심에는 평생 한 발짝도 들이지 않았어요.
그가 30여 년에 걸쳐 완성한 게 『성호사설(星湖僿說)』이에요.
천문, 지리, 제도, 풍속까지 조선의 모든 것을 담은 30권짜리 책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한 사람이 혼자 30년 동안 위키피디아 항목을 하나씩 써낸 거예요.
흥미로운 건 제목이에요.
'사설(僿說)'이란 '보잘것없는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이익은 자신의 필생 역작에 스스로 "그냥 내가 끄적인 메모"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그런데 그 겸손한 메모가, 훗날 조선 후기 지식 지형도를 통째로 다시 그리게 돼요.

그는 자신이 한 번도 응시하지 않은 시험을 가장 통렬하게 비판했어요.
그것을 나라를 갉아먹는 좀벌레라고 불렀어요.
이익이 조선 사회의 문제를 직접 진단한 책이 『곽우록(藿憂錄)』이에요.
이 책에서 그는 노비제, 과거제, 문벌, 사치, 승려의 과잉, 게으름을 '나라를 갉아먹는 여섯 가지 좀벌레'로 규정했어요.
그리고 그 여섯 가지 중에서 가장 강하게 날을 세운 게 과거제였어요.
조선 사대부 전부가 목숨 걸고 매달리던 바로 그 시험이요.
이익이 본 문제는 간단했어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공부가 나라에 진짜 필요한 공부를 밀어낸다는 거였어요.
결국 실력이 아니라 암기와 요령과 문벌이 나라를 운영하게 된다는 거예요.
아이러니한 건, 그 시험을 한 번도 통과해본 적 없는 시골 학자의 말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냉정하게 볼 수 있었던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수능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수능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책으로 써낸 것과 같아요.

이익은 정약용을 본 적이 없어요.
이익이 세상을 떠날 무렵, 정약용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다산의 사상적 출발점은 결국 그 시골집 책상이었어요.
이익의 생각은 곧장 정약용에게 닿지 않았어요.
이익에게 직접 배운 제자들, 안정복, 이가환, 권철신을 통해 조금씩 바깥으로 퍼져 나갔어요.
그러다 정약용이 열여섯 살 되던 해, 이익이 남긴 유고를 처음 손에 쥐게 됐어요.
정약용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어요.
"이때 비로소 학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 남긴 수백 권의 저술이 있어요.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 벼슬 하나 없이 시골에 묻혀 살다 간 한 학자의 메모였어요.
이익이 살아있는 동안 그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메모는, 그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가장 강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권력을 향해 손을 뻗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조선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게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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