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12년 방치한 이유
1928년 9월, 책상 위 접시 한 장에 푸른 곰팡이가 피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세균학자의 책상에는 씻지 않은 접시들이 쌓여 있었어요.
정확히는, 세균이 가득 든 배양 접시들이요.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 9월, 스코틀랜드에서 3주 휴가를 마치고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 실험실로 돌아왔어요.
세인트메리는 의학도들을 교육하는 병원으로, 플레밍이 세균을 연구하던 곳이에요.
그리고 그 실험실은 동료들 사이에서 지저분하기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그 접시 중 하나가 달랐어요.
푸른 곰팡이(Penicillium notatum)가 피어 있었거든요.
냉장고에 넣는 걸 깜빡한 빵에도 피는 바로 그 종류예요.
하지만 곰팡이 주변 약 1cm 원 안의 포도상구균이 말끔히 녹아 사라져 있었어요.
공기 중에 떠다니던 곰팡이 포자가 우연히 접시에 내려앉은 거예요.
그게 전부였는데, 그것이 기적의 증거가 되었어요.
그의 1929년 논문을 12년 동안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남자는 그것을 약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어요.
플레밍은 1929년 『영국 실험병리학 저널』에 이 발견을 논문으로 발표했어요.
하지만 결론은 뜻밖이었어요.
"임상 약으로는 쓸 수 없다."
페니실린을 순수하게 뽑아내는 정제 작업에 실패했기 때문이에요.
약이 되려면 불순물 없이 뽑아야 하는데, 그 기술이 없었어요.
그래서 플레밍은 접어뒀어요.
수첩에 아이디어를 적어두고 "나중에 해야지" 했다가 결국 서랍 속에 묻어두는 상황이에요.
그 논문은 이후 10년 동안 거의 아무도 인용하지 않았어요.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도, 그것을 가장 오래 들여다본 사람도 플레밍이었지만, 거기서 멈춰버렸어요.
옥스퍼드의 두 과학자가 잊힌 논문을 꺼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을 세상에 꺼낸 것은 플레밍이 아니었어요.
1938년, 옥스퍼드 대학의 하워드 플로리와 언스트 체인이 자연계 항균 물질을 연구하다가 논문 더미를 뒤지고 있었어요.
항균 물질이란 세균을 죽이는 자연 성분을 말해요.
그 더미 속에서 9년 묵은 플레밍의 논문이 나왔어요.
두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요.
1940년, 드디어 페니실린 정제에 성공했어요.
쥐 8마리를 실험했는데 4마리를 살렸어요.
내가 10년 전 블로그에 반응 없이 묻어둔 글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발견해 베스트셀러로 만든 상황이에요.
마침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어요.
전쟁터에서 총상보다 감염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고, 군대는 이 물질에 즉각 주목했어요.
기술은 미국 제약사들에 넘어갔고, 대량 생산이 시작됐어요.
첫 환자 경찰관 한 명이 장미 가시에 긁혀 죽었다
세계 최초로 페니실린을 맞은 환자는, 페니실린이 모자라 죽었어요.
1941년 2월, 옥스퍼드의 경찰관 앨버트 알렉산더는 43살이었어요.
장미 가시에 얼굴을 긁혔어요.
작은 상처였지만 패혈증으로 번졌어요.
패혈증은 세균이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장기를 망가뜨리는 병이에요.
당시엔 손쓸 방법이 없었어요.
플로리 팀이 페니실린을 투여했어요.
5일 만에 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재고가 바닥났어요.
팀원들은 알렉산더의 소변에서 페니실린 성분을 회수해 다시 투여하는 방법까지 시도했어요.
하지만 결국 공급이 끊겼고, 알렉산더는 사망했어요.
1945년, 플레밍·플로리·체인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받았어요.
씻지 않은 접시, 서랍 속에 잠든 논문, 그리고 장미 가시 하나.
당신이라면 이 세 가지 중 어디에 '행운'이라는 이름을 붙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