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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레오폴트 크로네커는 수학자가 되기 전에 이미 부자였어요.
19세기 베를린에서 그는 삼촌의 사업을 물려받아 곡물 거래와 금융으로 막대한 재산을 쌓았어요.
그런데 34살이 되던 해, 그는 돌연 사업을 접고 수학으로 돌아섰어요.
평생 돈을 세고 거래하던 사람이 결국 가장 사랑한 건 돈을 세는 데 쓰인 숫자 자체였던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 훗날 그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신이 만든 것은 정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다."
크로네커는 수학을 모른 채 사업을 한 게 아니에요.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 박사를 받은 뒤 사업 세계로 뛰어들었고, 성공한 다음 다시 수학으로 돌아왔어요.
그는 선택지가 있었고, 직접 수학을 골랐어요.

크로네커에게 수학은 신앙에 가까웠어요.
그는 딱 하나의 원칙을 믿었어요.
"수학에서 진짜 존재하는 것은, 유한한 단계 안에서 실제로 만들 수 있는 것뿐이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레시피가 있어야 요리가 존재하는 거지, "무한히 저어라"라고 적힌 레시피는 요리법이 아닌 것처럼요.
그래서 그는 정수와 분수만 진짜 수로 인정하고, √2처럼 소수점이 끝없이 이어지는 수는 가짜라고 봤어요.
이 철학은 유한주의(finitism)라고 불러요.
"존재한다고 말하려면,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크로네커는 이 원칙 위에서 뛰어난 수학 결과를 냈어요. 하지만 문제는 이 원칙을 남에게도 강요하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크로네커는 칸토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를 수학계에서 지워버리려 했죠.
게오르크 칸토어라는 젊은 수학자는 당시 수학계 최대의 금기를 건드렸어요. 바로 무한(infinity)이었어요.
칸토어가 증명한 건 이거예요. 무한은 그냥 "엄청 큰 수"가 아니라, 크기가 서로 다른 무한이 여러 종류 있다는 것이에요.
자연수(1, 2, 3...)의 무한과 실수 전체의 무한은 크기가 달라서, 실수 쪽이 "더 크다"는 걸 엄밀하게 증명했죠.
크로네커는 이걸 보고 격분했어요.
"무한히 많은 원소를 가진 집합"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의 원칙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였으니까요.
그는 칸토어를 "청년들을 타락시키는 자"라고 공개적으로 불렀어요.
그런데 그냥 욕만 한 게 아니에요.
크로네커는 당시 베를린 대학의 핵심 교수로, 독일 수학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칸토어가 더 좋은 대학으로 가려 할 때마다, 크로네커가 그 길을 막았어요.
칸토어가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려 하면, 크로네커는 편집자에게 압력을 넣어 게재를 방해했어요.
칸토어는 자신의 발견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증명하면 증명할수록 공격이 거세졌어요.
그는 결국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요양원에 반복적으로 입원했어요.

크로네커는 1891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역사는 그의 반대편 손을 들었죠.
칸토어의 집합론(set theory), 무한을 포함한 수들의 집합을 다루는 이 이론은, 20세기 수학 전체의 기초가 됐어요.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는 이렇게 선언했어요. "아무도 우리를 칸토어가 만든 낙원에서 추방할 수 없다."
칸토어는 1918년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어요.
완전한 명예 회복을 보지 못한 채였어요.
그러나 오늘날 집합론 없이는 컴퓨터 과학도, 현대 논리학도 성립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야기에는 뒤틀린 반전이 하나 더 있어요.
크로네커가 지키려 했던 구성주의 수학(constructivism), "만드는 방법을 보여야 존재한다"는 철학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근간이 바로 그 논리거든요.
알고리즘은 결국 "유한한 단계로 답을 만드는 방법"이에요.
크로네커가 옳았다고 말하기엔, 그가 칸토어에게 한 짓이 너무 가혹했어요.
하지만 그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엔, 그의 철학이 지금도 너무 살아있어요.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진짜 패자는 누구일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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