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하야시 라잔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존재의 모습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삭발한 머리, 승려의 외양 — 그가 평생 파괴하려 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일본 최고의 주자학(朱子學) 자였습니다.
주자학은 중국 송나라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교 철학으로,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도덕을 하나의 논리로 연결한 학문입니다.
라잔에게 불교는 "형체도 없는 공허한 가르침"이었고, 실체 없는 환상으로 백성을 홀리는 위험한 미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도 막부(江戶幕府) — 도쿠가와 가문이 세운 일본의 중앙 군사 정권 — 는 학자에게 불교식 삭발, 즉 득도(得度)를 요구했습니다.
승려처럼 보여야만 공적인 발언권이 생기는 구조였습니다.
라잔은 불교를 파괴하려면, 먼저 불교의 제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회사 유니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복장 자유화를 주장하고 싶은데, 그 주장을 하려면 일단 그 유니폼을 입고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라잔의 삶은 정확히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경멸하는 상징을 몸에 두른 채, 60년 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스승이 거절한 자리를 제자가 꿰찬 것은 배신이었을까, 아니면 학문이 세상에 쓰이는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1605년, 스물셋의 라잔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를 만났습니다.
이에야스는 수십 년에 걸친 전국시대의 전란을 끝낸 직후,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 — 일본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군사 최고 권력자 — 으로 막 자리를 굳힌 인물이었습니다.
칼로 천하를 잡은 사람에게는 이제 다른 것이 필요했습니다.
칼이 아닌 논리로 백성을 다스릴 도구, 왜 이 질서가 자연스러운지 설명해줄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라잔은 그것을 들고 나타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 자리는 라잔의 스승인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에게 먼저 제안되었습니다.
세이카는 거절했습니다.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이 학자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학문을 배운 사람이 서로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스승은 자유를 택했고, 제자는 영향력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권력을 택한 쪽을 훨씬 더 크게 기록했습니다.
일본에서 260년간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그 법칙을 만든 사람은, 정작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라잔은 주자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 —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보편적 이치 — 를 일본의 신분 질서에 적용했습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 사회에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논리였습니다.
그가 설계한 체계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이었습니다.
무사(士)가 맨 위에, 농민(農)·장인(工)·상인(商) 순으로 아래에 놓이는 4계급 구조입니다.
이 순서는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이제 하늘의 질서를 반영한 철학적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라잔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학문으로 권력에 접근한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난 신분이 아니라, 지식과 재능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었습니다.
비정규직에서 시작해 임원이 된 사람이 "비정규직은 원래 비정규직 자리에 있어야 해"라는 사규를 만드는 것, 라잔의 이론은 정확히 그런 구조였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가 만든 이론의 반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평생 직면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야시 라잔이 설계한 신분제는 260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운 학교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라잔은 에도에 자신의 사숙(私塾) — 개인이 운영하는 학당 — 을 열었습니다.
이 학교는 후에 막부의 공식 지원을 받아 쇼헤이코(昌平坂学問所) 로 발전했습니다.
쇼헤이코는 막부 공인 최고 교육기관으로, 하야시 가문이 대대로 대학두(大学頭) — 막부 최고 학술 직위 — 를 세습하며 운영했습니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 일어났습니다.
메이지 유신은 천황 중심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에도 막부 체제 전체가 붕괴된 사건입니다.
라잔이 평생 정당화한 신분제, 사무라이 계급의 특권, 260년의 질서가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교육은 남았습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학문의 공간이, 결국 그 체제를 넘어설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냈습니다.
직원을 통제하려고 만든 사내 교육 프로그램이, 결국 직원들이 독립할 역량을 키워준 꼴이 된 것처럼.
라잔은 질서를 영원히 고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그 질서를 넘어서는 데 쓰인 도구였습니다.
교육이 권력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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