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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내 안의 참된 나(아트만)와 우주의 근본(브라만)이 사실은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그것을 깨닫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봅니다.
1893년 시카고의 한 강당에서 인도 승려 한 명이 "Sisters and brothers of America!"(미국의 형제자매 여러분!)라고 외치자, 7천 명의 청중이 2분 동안 일어서서 박수를 쳤어요.
이 사람이 비베카난다이고, 그가 서양에 소개한 인도 철학의 핵심이 바로 아드바이타 베단타예요.
'아드바이타(advaita)'는 산스크리트어로 '둘이 아님'을 뜻해요.
'아(a)'는 '아니다', '드바이타(dvaita)'는 '둘'이니까 붙이면 '둘이 아니다'가 되지요.
무엇이 둘이 아니라는 걸까요?
바로 '나'와 '우주 전체의 근본'이에요.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이 둘이 겉보기에는 갈라져 있어도 뿌리에서는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 글에서 붙잡고 갈 딱 한 문장이에요.
바닷물을 떠올려 볼게요.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수없이 일어요.
파도 하나하나는 저마다 모양도 크기도 달라서 서로 다른 존재처럼 보여요.
그런데 파도를 이루는 것은 결국 다 같은 바닷물이에요.
파도가 잠잠해지면 남는 건 그냥 바다뿐이지요.
아드바이타 베단타에서 이 바다에 해당하는 것이 '브라만(Brahman, 梵)'이에요.
중국어 자료는 브라만을 '우주의 정신', 즉 세상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본질이라고 설명해요.
그리고 파도 하나에 해당하는, 내 안에 있는 참된 나를 '아트만(Ātman)'이라고 불러요.
아드바이타의 핵심은 이거예요.
아트만과 브라만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실재라는 것.
파도가 곧 바다이듯, 내 안 가장 깊은 곳의 나는 곧 우주의 근본과 하나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철학에서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길이 돼요.
중국어 자료도 현실의 물질세계를 '브라만에 이르는 하나의 계단'이라고 표현했어요.
계단은 오르라고 있는 것이지 그 위에 눌러앉으라고 있는 게 아니지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게요.
비베카난다의 베단타에는 재미있는 이중성이 있어요.
학자 아닐 수클랄에 따르면, 그는 브라만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보면서 동시에 두 얼굴로 설명했어요.
| 이름 | 뜻 | 비유 |
|---|---|---|
| 사구나(saguṇa) | 속성이 있는 브라만 | 이름과 얼굴이 있어 기도할 수 있는 신 |
| 니르구나(nirguṇa) | 속성이 없는 브라만 | 형체도 이름도 넘어선 순수한 근본 |
두 모습이 결국 같은 바다이듯, 사람들이 예배하는 인격적인 신(사구나)과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절대적 근본(니르구나)은 결국 하나의 브라만이에요.
수클랄은 비베카난다의 이런 관점이 '둘로 봄(드바이타)'과 '둘이 아님으로 봄(아드바이타)'을 화해시킨다고 정리했어요.
낮은 자리에서는 신을 섬기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신마저 나와 둘이 아님을 깨닫는 식이지요.
나와 우주가 하나라면, 남과 나도 뿌리에서는 하나예요.
이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모든 종교의 길은 결국 한곳으로 통한다'는 태도로 이어졌어요.
비베카난다는 시카고 연설에서 「시바 마힘나 스토트람」의 구절을 인용했어요.
"서로 다른 곳에서 발원한 여러 강물이 결국 바다에서 섞이듯이, 오 주여,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성향에 따라 택하는 여러 길들은 굽었든 곧든 그 겉모습이 다를지라도 결국 모두 당신께로 이어집니다."
그는 개종을 권하지도 않았어요.
"나는 감리교인을 더 나은 감리교인으로, 장로교인을 더 나은 장로교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지요.
모든 강이 한 바다로 흘러든다면, 남의 강물을 내 쪽으로 돌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것이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둘이 아님'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드러난 모습이에요.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어려운 말 같지만 뼈대는 단순해요.
'둘이 아니다.'
내 안의 참된 나(아트만)와 우주의 근본(브라만)은 파도와 바다처럼 하나이고, 그 하나를 깨닫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것이에요.
그 하나의 브라만은 기도할 수 있는 얼굴(사구나)로도, 형체를 넘어선 근본(니르구나)으로도 나타나지만 둘 다 같은 실재예요.
그리고 나와 우주가 하나라면 종교의 여러 길도 결국 한 바다로 흐른다는 관용이 따라 나와요.
비베카난다가 서양에 건넨 것은 바로 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시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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