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야마가 소코에게 예(禮)는 감정을 억지로 참게 하는 규칙이 아니라, 마음에서 솟은 진심(誠)을 알맞은 형식으로 다듬어 참된 것으로 완성하는 틀이에요. 그래서 그는 예의 절제를 받은 진심만을 '부득이지성(不得已之誠)'이라 불렀어요.
야마가 소코는 1622년부터 1685년까지 산 에도 시대 전기의 유학자이자 병학자예요.
무사의 윤리를 정리한 사상가로 유명하지만, 오늘은 딱 하나, 그가 말한 예(禮), 일본어로 '레이(Rei)'라고 읽는 이 개념에만 좁게 집중할게요.
예(禮)라고 하면 보통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르게 굴기" 정도를 떠올리죠.
그런데 야마가에게 예는 그보다 훨씬 깊었어요.
그는 예를 '마음속 진심을 알맞은 모양으로 담아내는 틀'로 봤어요.
물을 떠올려 보세요.
물은 정해진 모양이 없어서 손바닥에 부으면 그냥 흘러내리지만, 컵에 담으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잖아요.
야마가에게 진심(誠)은 그 물이고, 예(禮)는 그 물을 쓸모 있게 담는 컵이에요.
컵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물도 바닥에 쏟아져 버리고 말죠.
야마가는 '성(誠)'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어요.
성이란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 억누를 수 없는 정(情), 곧 진짜 감정이에요.
그는 이 성이야말로 도(道)·덕(德)·인의(仁義)·예악(禮樂) 같은 모든 좋은 것의 뿌리라고 했고, 머리로 아는 데 그치지 말고 힘써 행해야(力行) 한다고 봤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어요.
감정이 솟는다고 무조건 그대로 쏟아내면 될까요?
화가 난다고 아무에게나 소리치고, 좋다고 마구 들이대면 그건 참된 진심이 아니라 그냥 날것의 감정일 뿐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때도, 준비 없이 감정만 쏟으면 오히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잖아요.
그래서 야마가는 정(情)을 무턱대고 따르면 안 되고, 예(禮)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예로 다듬어진 진심을 그는 '부득이지성(不得已之誠)', 즉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참됨'이라고 불렀어요.
억지로 꾸민 게 아니라, 예를 거쳐 자연스럽게 알맞은 모양이 된 진심이라는 뜻이에요.
같은 감정이라도 예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져요.
| 상황 | 마음속 감정(情) | 겉으로 드러난 모습 |
|---|---|---|
| 예(禮)가 없을 때 | 억누를 수 없는 날것의 감정 | 감정이 그대로 터져 나옴 |
| 예(禮)가 있을 때 | 똑같이 솟아난 감정이지만 | 알맞은 형식으로 절제된 참된 진심(不得已之誠) |
예는 내 감정 하나만 다듬는 게 아니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질서이기도 해요.
야마가는 무사라면 겉으로는 검과 활 다루는 실력을 갖추되, 안으로는 군신·붕우·부자·형제·부부의 도리, 곧 사람 사이의 다섯 가지 관계에 힘써야 한다고 봤어요.
이 관계마다 지켜야 할 알맞은 태도가 바로 예예요.
부모에게는 부모에게 맞는 예, 친구에게는 친구에게 맞는 예가 있다는 거죠.
야마가는 이런 위아래와 관계의 구별을 누가 억지로 만든 규칙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라고 봤어요.
그는 군신 상하의 구별을 두고 "非以力而成,乃天地自然之仪则", 곧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법칙이다'라고 했어요.
계절이 봄·여름·가을·겨울 순서로 오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자리도 자연스러운 질서를 따른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그의 예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강한 위계 의식이 담겨 있어요.
오늘의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엄격해 보이는 대목이지만, 야마가에게 예란 감정을 담는 컵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함께 사는 자리를 정해 주는 틀이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해요.
야마가가 말한 예를 요즘 말로 옮기면 '진심을 전하는 방식'에 가까워요.
마음이 아무리 진하다 해도, 전하는 방식이 거칠면 그 마음은 제대로 닿지 못해요.
반대로 형식만 그럴듯하고 속이 비어 있으면 그건 예가 아니라 겉치레예요.
야마가가 예의 뿌리에 성(誠), 즉 진심을 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진심 없는 형식도, 형식 없는 진심도 반쪽이라는 거죠.
숙제를 미안해하는 마음이 있어도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사과가 달라지고, 친구를 아끼는 마음도 그걸 어떤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우정이 깊어지거나 어긋나잖아요.
야마가의 예는 바로 그 '어떻게'에 관한 지혜예요.
야마가 소코에게 예(禮)는 예의범절 이상의 것이었어요.
첫째, 예는 마음에서 솟는 진심(誠)을 알맞은 모양으로 담는 컵이에요.
둘째, 감정을 그대로 쏟는 게 아니라 예의 절제를 거쳐야 참된 진심, 곧 '부득이지성(不得已之誠)'이 돼요.
셋째, 예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람 사이 관계의 자연스러운 질서까지 정해 주는 틀이었어요.
진심은 물, 예는 그 물을 담는 컵이라는 그림 하나만 기억해도, 야마가가 왜 진심을 예로 다듬어야 참이 된다고 했는지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을 거예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