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왕부지의 '일신(日新)'은 세상 만물도 사람의 성품도 태어날 때 정해진 채 굳어버리는 게 아니라, 날마다 새것이 생겨나 갈아입는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오늘 무엇을 듣고 보고 행하느냐에 따라 매일 다시 빚어집니다.
강가에 서서 어제 본 강과 오늘 본 강을 떠올려 볼까요.
겉보기엔 똑같은 강 같지만, 지금 눈앞을 흘러가는 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라 전부 새로 도착한 물이에요.
왕부지가 말한 '일신(日新)', 곧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바로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예요.
왕부지(1619년~1692년)는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던 혼란기에 후난성 산속에 숨어 살며 글을 쓴 사상가예요.
그는 세상 만물이 한 번 만들어진 뒤 그대로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날마다 새것이 생겨나며 낡은 것을 갈아입는다고 봤어요.
사람의 성품도 예외가 아니어서, 태어날 때 딱 정해진 채 평생 굳어 있는 게 아니라 살아가며 매일 새로 만들어진다고 했지요.
이 생각을 그는 '성일생이일성(性日生而日成)', 곧 '성품은 날마다 태어나고 날마다 이루어진다'는 말로 남겼어요.
당시 많은 사람은 성품이란 하늘이 태어날 때 딱 정해서 넣어 준 것이라 여겼어요.
착하게 태어난 사람, 그렇지 않게 태어난 사람이 처음부터 갈린다는 식이죠.
왕부지는 여기에 고개를 저었어요.
화분에 심은 씨앗을 떠올려 봐요.
씨앗 안에 이미 모든 게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일 물과 햇빛을 받으며 오늘의 새 잎이 돋아나요.
어떤 물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자라는 모습이 달라지고요.
성품도 이와 같아서, 오늘 어떤 말을 듣고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하느냐가 바로 오늘의 성품을 새로 빚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품은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 매일 새로 짓는 집에 가까워요.
그럼 그 성품은 누가 짓는 걸까요.
왕부지는 《사서훈의(四書訓義)》에서 이렇게 말해요.
生之初,人未有权也,不能自取而自用也。已生之后,人既有权也,能自取而自用也。
풀이하면 '태어난 처음에는 사람에게 권한이 없어 스스로 취해 스스로 쓸 수 없다. 이미 태어난 뒤에는 사람에게 권한이 생겨 스스로 취해 스스로 쓸 수 있다'예요.
갓난아기 때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고르지 못하지만, 자라면 내가 직접 고르고 쓸 '권한'이 생긴다는 말이에요.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것과 비슷해요.
처음 초기값은 내가 정한 게 아니지만, 자라면서 어떤 능력을 키울지는 내 선택으로 정해 가잖아요.
왕부지에게 성품이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건 곧 '내가 오늘 무엇을 고르느냐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책임의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어요.
"세상엔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많지 않나요?"
왕부지는 그 '가만히 있음'조차 다시 봐요.
动而成象则静,静者静动,非不动也。
'움직여 상(象)을 이루면 고요함이 되니, 고요함은 움직임이 고요해진 것이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빠르게 도는 팽이가 오히려 멈춰 선 듯 보이는 것처럼, 고요함은 움직임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잠시 가라앉은 모습일 뿐이라는 거죠.
세상은 근본적으로 늘 움직이고, 움직이니까 늘 새로워져요.
일신이 어쩌다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세상이 굴러가는 기본 방식인 이유가 여기 있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자주 하고 자주 듣죠.
왕부지의 일신은 이 말에 부드럽게 반박해요.
원래 정해진 나는 없고, 오늘의 선택과 행동이 조금씩 나를 다시 짓는다고요.
다만 오해는 말아야 해요.
왕부지는 어느 날 갑자기 확 깨달아 사람이 완전히 바뀐다고 보지 않았어요.
그는 앎보다 행함을 앞세워, 실제로 해 보고 겪는 것이 쌓여야 진짜 앎이 된다고 봤거든요.
그러니 일신은 하루아침의 대변신이 아니라, 오늘 한 작은 행동이 성품에 한 겹 더해지는 느린 일이에요.
매일 조금씩 흐르는 강물처럼요.
왕부지의 일신(日新)은 세 가지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세상 만물은 멈춰 있지 않고 날마다 새것으로 갈아입어요.
둘째, 사람의 성품도 태어날 때 굳는 게 아니라 '성일생이일성', 날마다 태어나고 날마다 이루어져요.
셋째, 자란 뒤에는 스스로 고를 권한이 생기므로, 오늘 무엇을 듣고 보고 행하느냐가 내일의 나를 짓습니다.
강물이 어제와 같아 보여도 늘 새 물이 흐르듯, 우리도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나는 중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