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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왕부지는 세상 모든 것이 '기(氣)'라는 한 가지 재료로 되어 있다고 봤어요. 흔히 기보다 높은 자리에 따로 있다고 여긴 이치, 곧 리(理)는 기가 움직이는 결일 뿐 기와 떨어져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론입니다.
찰흙 한 덩어리로 컵도 만들고 강아지도 만든다고 생각해 볼까요.
모양은 제각각이어도 재료는 똑같은 찰흙이에요.
왕부지(王夫之, 1619년부터 1692년까지)의 '기본론(氣本論)'은 바로 이 생각과 닮았어요.
하늘, 땅, 돌, 나무, 사람, 마음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결국 '기(氣)'라는 한 가지 재료로 이루어졌다고 본 거예요.
여기서 '기'는 유령 같은 신비한 기운이 아니라, 세상을 채우고 끊임없이 뭉쳤다 흩어지는 실제 '바탕 재료'에 가까워요.
이 재료 말고 세상을 따로 떠받치는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기가 근본(本)'이라는 뜻으로 기본론이라 불러요.
왕부지는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선 격변기를 살며 평생 두발을 깎지 않고 저항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가 남긴 철학의 뼈대가 이 기본론이에요.
왕부지 이전의 유학, 특히 정주 성리학에서는 흔히 이렇게 설명했어요.
세상 위에 먼저 완벽한 이치(理)가 있고, 그 이치를 따라 기가 모여 사물이 생긴다고요.
말하자면 설계도가 먼저 있고 그다음에 벽돌이 쌓인다는 순서예요.
왕부지는 이 순서를 뒤집었어요.
설계도 따로, 벽돌 따로가 아니라는 거죠.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尽天地之间,无不是气,即无不是理也" — 천지간에 가득한 것은 모두 기(氣) 아님이 없으니, 곧 리(理) 아님이 없다.
세상을 채운 게 전부 기이고, 그 기가 있는 곳에 이치도 이미 함께 있다는 뜻이에요.
재료가 없는데 '재료를 쌓는 규칙'만 허공에 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오직 기만이 진짜 실재한다고 본 점 때문에 후대에 그를 '유물론에 가까운 사상가'로 평가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왕부지가 이치를 없애버린 건 아니에요.
이치는 분명히 있어요.
다만 '어디에' 있느냐가 달라요.
비유를 들어 볼게요.
강물이 흐를 때 물결의 결이 생기죠.
이 결은 물과 떨어져 따로 존재하지 않아요.
물이 흐르니까 결도 있는 거예요.
물을 다 퍼내면 결만 남을 수 없잖아요.
왕부지에게 리(理)가 바로 이 물결의 결이에요.
기라는 물이 움직이는 그 자체의 질서가 이치라는 거죠.
그래서 이치가 먼저고 기가 나중이라는 선후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어요.
리와 기는 시간 순서로 줄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붙어 다녀요.
(기 안에 이치가 있다는 이 이야기는 '리재기중'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더 깊이 다뤄요.)
기본론의 또 다른 핵심은, 이 재료가 살아 움직인다는 점이에요.
찰흙은 누가 주물러야 움직이지만, 왕부지의 기는 스스로 뭉치고 흩어지며 쉼 없이 운동해요.
그는 고요함조차 멈춤이 아니라고 봤어요.
"动而成象则静,静者静动,非不动也" — 움직여 상(象)을 이루면 고요함이 되니, 고요함은 움직임이 고요해진 것이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멈춘 듯 보여도 사실은 움직임이 잠시 가라앉은 상태라는 거예요.
마치 팽이가 아주 빠르게 돌 때 오히려 멈춘 듯 서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 기는 음(陰)과 양(陽)으로 갈라져 서로 밀고 당기며 온갖 것을 만들어내요.
왕부지는 음양이 "必相反而相为仇" 서로 반대되어 원수처럼 맞서지만 "互以相成,无终相敌之理" 서로 도와 이루어주니 끝까지 적대하기만 하는 이치는 없다고 했어요.
대립하는 힘들이 부딪치면서 오히려 세상이 굴러간다는 거죠.
왕부지의 기본론은 세 문장으로 기억하면 좋아요.
첫째, 세상 모든 것은 '기'라는 하나의 실제 재료로 되어 있어요.
둘째, 이치(理)는 기 위에 따로 떠 있는 설계도가 아니라 기가 움직이는 결이라, 기와 떨어져 홀로 존재하지 않아요.
셋째, 그 기는 멈춘 듯 보일 때도 스스로 움직이며 음양의 밀당으로 만물을 빚어내요.
신비한 기운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채운 하나의 바탕에서 출발해 이치와 변화를 설명하려 한 시도라는 점을 붙잡으면 왕부지 철학의 문이 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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