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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은 한 왕조가 무너지는 일과 문명 자체가 무너지는 일을 갈라 본 말이에요. 성씨가 바뀌는 정권 교체는 벼슬아치들의 몫이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도리가 무너지는 일만큼은 이름 없는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에요.
여덟 글자를 그대로 풀면 "천하(天下)가 흥하고 망하는 데에는 필부(匹夫)에게도 책임이 있다"예요.
필부는 벼슬도 재산도 없는 평범한 사람, 오늘로 치면 그냥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에요.
이 말을 남긴 사람은 고염무(顧炎武, 1613~1682)예요.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은 사상가지요.
보통 우리는 "나라 걱정은 높은 사람들이 하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이 뭘" 하고 생각하잖아요.
고염무는 정반대로 말해요.
진짜 중요한 것이 무너질 때는 오히려 보통 사람 하나하나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이 말의 핵심이에요.
고염무는 "망국(亡國)"과 "망천하(亡天下)"를 딱 갈라서 봤어요.
우리는 보통 이 둘을 같은 말로 쓰지만, 그에게는 전혀 다른 사건이었어요.
비유를 들어 볼게요.
어느 식당의 사장이 바뀌는 일과, 사람들이 아예 밥 먹을 때 서로를 배려하는 예절 자체를 잊어버리는 일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앞엣것은 간판만 바뀌는 일이고, 뒤엣것은 "식당"이라는 것이 성립하던 바탕이 무너지는 일이에요.
고염무가 본 차이가 바로 이거예요.
| 구분 | 망국(亡國) | 망천하(亡天下) |
|---|---|---|
| 무엇이 무너지나 | 한 왕조·성씨(정권) | 사람다움의 도리(문명) |
| 예를 들면 | 명나라가 청나라로 바뀜 | 사람이 서로를 짐승처럼 대함 |
| 누구 책임인가 | 벼슬한 사람들 | 필부까지 모두 |
왕조가 바뀌는 것은 결국 어느 임금 밑에서 벼슬하던 사람들이 감당할 일이에요.
하지만 사람 사이의 도리, 즉 예의와 염치가 통째로 무너져 아무도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는 일은 다르지요.
고염무는 이걸 "천하가 망한다"고 불렀고, 이런 일에는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가 책임을 진다고 봤어요.
고염무가 말한 도리의 뼈대는 네 가지였어요.
그가 인용한 옛말은 이래요.
"禮義廉恥,是謂四維(예의염치, 시위사유)", 곧 "예·의·염·치, 이를 일러 네 가지 벼리(四維)라 한다"는 뜻이에요.
벼리는 그물을 잡아당기는 굵은 줄이에요.
이 네 줄이 끊어지면 그물 전체가 풀어져 버리듯, 예절과 옳음과 청렴과 부끄러움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풀어진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이 네 가지는 임금 한 사람이 지킨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에요.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 장사하는 사람, 밥 짓는 사람, 그러니까 필부 한 명 한 명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유지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염무는 이렇게 적었어요.
"保天下者,匹夫之賤,與有責焉(보천하자, 필부지천, 여유책언)", 곧 "천하를 보전하는 일은, 미천한 필부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말이에요.
이 생각이 그냥 책상 위 이론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해요.
고염무는 청군이 자기 고향을 함락할 때 어머니가 한쪽 팔이 잘리고 두 남동생이 죽는 참변을 직접 겪었고, 그를 길러 준 양어머니는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어요.
세상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으로 안 사람이었기에, "이런 일 앞에서 보통 사람이 뒷짐 지고 있어도 되느냐"고 물을 수 있었던 거예요.
조금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우리가 아는 "천하흥망 필부유책"이라는 매끈한 여덟 글자는, 정작 고염무의 책에는 그대로 나오지 않아요.
고염무가 직접 쓴 문장은 앞에서 본 "保天下者,匹夫之賤,與有責焉"이에요.
이 뜻을 후대의 학자 량치차오(양계초)가 외우기 쉽게 여덟 글자로 다듬은 것이 "천하흥망 필부유책"이지요.
원작자의 생각을 요약해 명언으로 굳힌 셈이에요.
그러니 이 말을 쓸 때는 "고염무의 뜻을 량치차오가 압축한 표현"이라고 알아 두면, 아는 척이 아니라 정확하게 아는 셈이에요.
오해하기 쉬운 지점도 하나 짚을게요.
이 말은 "보통 사람도 나라에 무조건 충성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고염무 자신이 청나라의 거듭된 벼슬 제안을 평생 거절했으니까요.
그가 지키자고 한 것은 특정 임금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문명 그 자체였어요.
"천하흥망 필부유책"은 두 가지를 갈라 보는 데서 시작해요.
왕조가 바뀌는 "망국"과, 사람다움의 도리가 무너지는 "망천하"는 다른 사건이에요.
앞엣것은 벼슬아치의 몫이지만, 뒤엣것에는 예의와 염치를 지키는 보통 사람 한 명 한 명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러니 이 말을 오늘 우리 식으로 옮기면 이렇게 돼요.
정권이 누구 손에 넘어가느냐는 큰 사람들의 다툼일 수 있어도, 서로 부끄러움을 아는 세상을 지키는 일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여덟 글자는 고염무의 뜻을 량치차오가 다듬은 표현이라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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