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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말은, 좌선하는 그 순간이 곧 깨달음이 드러나는 자리라는 뜻이에요. 깨달음을 나중에 받을 상(賞)으로 여기고 수행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르게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이미 깨달음의 실현이라는 거죠.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매일 발성 연습을 하는 사람을 떠올려 볼까요.
보통은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은 연습생일 뿐이고, 언젠가 실력이 붙으면 그때 진짜 가수가 되는 거야."
연습은 수단이고, 가수가 되는 건 나중에 올 결과라는 거죠.
그런데 어떤 스승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봐요.
"네가 지금 소리 내는 이 순간, 너는 이미 노래하는 사람이야. 잘 부르게 된 다음이 아니라, 부르고 있는 지금이 곧 노래야."
도겐(道元, 1200년부터 1253년까지 살았고, 일본 조동종을 연 선승)이 말한 수증일등(修証一等)이 바로 이 이야기예요.
여기서 수(修)는 수행, 곧 앉아서 참선하는 일이고, 증(證)은 깨달음, 곧 진리를 몸으로 확인하는 일이에요.
보통은 수행을 열심히 해서 그 끝에 깨달음이 온다고 여기죠.
도겐은 그 순서를 깨뜨려요.
수행과 깨달음은 앞뒤로 이어진 두 단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로 붙어 있는 한 몸이라는 거예요.
앉는 순간이 곧 깨닫는 순간이고, 깨달음은 앉는 일 바깥 어디에도 따로 있지 않다는 뜻이죠.
도겐은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질문 하나를 품고 있었어요.
그가 배운 텐다이(天台) 가르침에는 본각(本覚)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부처의 성품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어린 도겐은 여기서 막혔어요.
"이미 부처라면, 대체 왜 힘들게 수행을 해야 하지?"
이 물음이 그를 히에이산에서 중국 남송까지 이끌었어요.
이 질문의 답이 바로 수증일등이에요.
만약 수행이 '부처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면, 이미 부처인 사람에게 수행은 쓸데없는 일이 되겠죠.
하지만 수행 자체가 곧 깨달음의 모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이미 부처인 사람이 앉는 것은 부처가 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부처인 자기 모습을 지금 그대로 살아 내는 일이 되는 거예요.
도겐은 이 생각을 중국에서 돌아온 뒤 1231년경에 쓴 『벤도와(弁道話)』에서 처음이자 가장 또렷하게 밝혔어요.
자료에 로마자로만 전하는 그 대목의 구절은 [shushō kore itto nari], 곧 '수행과 깨달음은 하나다'라는 말이에요.
여기서 도겐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나와요.
만약 우리가 "깨달음을 얻으려고" 앉는다면, 우리는 은근히 깨달음을 저 앞에 놓인 상품처럼 여기고 있는 거예요.
시험 합격을 노리고 공부하듯, 깨달음을 노리고 앉는 거죠.
그러면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늘 '아직 부족한 준비 단계'로 밀려나요.
도겐이 보기엔 이게 가장 큰 착각이었어요.
계단을 밟는 사람을 생각해 봐요.
꼭대기에 도착하는 것만 목표라면, 밟고 있는 계단 한 칸 한 칸은 그저 스쳐 지나는 과정일 뿐이죠.
하지만 도겐은 말해요.
밟고 있는 그 한 칸이 이미 도착이라고요.
그래서 그는 견성(見性)처럼 '깨달음을 딱 붙잡아 확인한다'는 식의 태도를 강하게 경계했어요.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어요.
도겐이 깨달음 자체가 필요 없다고 말한 건 아니에요.
그가 거부한 건 '깨달음을 목표로 걸어 두고 그것을 향해 앉는 마음가짐'이지, 깨달음의 소중함이 아니었어요.
목표를 지우면 오히려 지금 이 자리가 온전히 깨달음이 된다는 것, 이게 수증일등의 묘한 뒤집기예요.
우리는 늘 '나중'을 위해 '지금'을 참고 견디며 살아요.
취직하면, 돈을 모으면, 은퇴하면 그때 행복해질 거라고요.
그래서 오늘 하루는 언제나 목적지로 가는 다리처럼 취급되죠.
도겐의 수증일등은 이 습관을 정면으로 흔들어요.
다리가 곧 목적지라면 어떨까요.
물론 도겐이 말한 건 종교 수행의 이야기라, 우리 일상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어요.
그래도 한 가지 태도는 배울 만해요.
설거지를 '밥 먹고 쉬기 위한 귀찮은 과정'으로 여기면 그 시간은 늘 버려지는 시간이 되지만, 그릇을 닦는 그 손놀림 자체를 온전히 하면 그 순간이 이미 충실해져요.
도겐이 앉는 일에서 본 것도 이런 것이었어요.
앉음이 깨달음을 낳는 씨앗이 아니라, 앉음이 곧 열매라는 것.
목적을 위해 현재를 소모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800년 전 선승이 남긴 한마디에서 지금도 건져 올릴 수 있는 결이에요.
수증일등은 수행(修)과 깨달음(證)이 앞뒤로 이어진 두 단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라는 도겐의 가르침이에요.
앉아서 참선하는 지금 이 순간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깨달음이 드러나는 자리라는 뜻이죠.
이 생각은 '이미 부처라면 왜 수행하는가'라는 도겐의 오랜 물음에 대한 답이었고, 1231년경 『벤도와』에서 또렷이 밝혀졌어요.
핵심은 깨달음을 저 앞의 목표로 걸어 두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목표로 삼는 순간 지금은 늘 부족한 과정이 되지만, 목표를 지우면 지금 이 자리가 온전한 깨달음이 돼요.
나중을 위해 오늘을 참기만 하는 우리에게, 과정이 곧 결과일 수 있다는 이 뒤집기가 오래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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