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븐 아라비의 '마음의 종교'는 정해진 형식이나 겉모습이 아니라, 신을 향한 사랑으로 활짝 열린 마음 그 자체가 참된 신앙이라는 생각이에요. 그 마음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온 신이든 받아들일 만큼 넓다고 보았죠.
이븐 아라비는 1165년 지금의 스페인 무르시아에서 태어나 1240년 다마스쿠스에서 세상을 떠난 이슬람 신비주의(수피즘)의 거장이에요.
후대 수피들은 그를 '샤이흐 알아크바르'(가장 위대한 스승)라고 불렀죠.
그가 말한 '마음의 종교'를 한마디로 하면, 신앙의 진짜 자리는 규칙이 적힌 종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는 거예요.
여러 종교가 저마다 다른 예배 방식과 건물을 갖지만, 이븐 아라비는 그 겉모습 아래에서 사랑이 이끄는 길을 자기 신앙으로 삼았어요.
그의 사랑론에서 마음은 온갖 형상을 담을 만큼 넓은 그릇으로 그려져요.
마치 여러 나라 음악이 악보는 달라도 결국 같은 '소리'를 향하듯, 겉이 다른 신앙들도 하나의 사랑을 향한다고 본 거죠.
이븐 아라비는 사람이 무언가를 아는 방식을 세 가지로 나눴어요.
표로 보면 이래요.
| 앎의 종류 | 어디서 오나 |
|---|---|
| 합리적 지식 | 머리로 따지는 추론, 틀릴 수 있음 |
| 다우끄(dhawq, '맛봄') | 직접 겪어서 아는 체험적 앎 |
| 신적·신비적 앎 | 예언자에게 주어지는 이성 너머의 앎 |
여기서 핵심이 '다우끄(dhawq)', 곧 '맛봄'이에요.
설탕이 달다는 걸 아무리 긴 설명을 들어도 끝내 알 수 없고 혀에 직접 올려 봐야 알듯, 신에 대한 앎도 머리로만 따져서는 닿지 못한다는 거죠.
그 '맛봄'이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마음이에요.
그래서 이븐 아라비에게 마음은 그저 감정 덩어리가 아니라, 신을 직접 느껴서 아는 '기관'이었어요.
사랑이 종교의 중심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사랑은 머리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겪는 일이니까요.
이븐 아라비는 세계가 왜 생겨났는지를 '거울'로 설명했어요.
그의 글에 따르면, 신은 세계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거울로 삼아 스스로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려고 세계를 만들었다고 해요.
예쁜 옷을 차려입고 나면 거울 앞에 서고 싶어지는 마음, 그 끌림과 비슷하죠.
이 '보이고 싶고 알려지고 싶은 끌림'이 곧 사랑이에요.
그러니 세계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사랑에서 시작된 셈이고, 사람의 마음이 신을 사랑으로 되비출 때 그 고리가 완성돼요.
신이 사람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사람은 마음으로 그 손을 마주 잡는 거죠.
(거울과 '완전한 인간' 이야기는 그 자체로 큰 주제라, 여기서는 사랑과 이어지는 대목만 짚었어요.)
'사랑이 이끄는 길이 곧 종교'라니, 아무거나 마음대로 믿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에요.
이븐 아라비 자신은 평생 메카 순례와 기도를 이어가고 수백 편에 이르는 책을 쓴 엄격한 수행자였어요.
그가 말한 사랑은 제멋대로가 아니라, 마음을 오래 갈고닦아야 겨우 열리는 깊은 앎이었죠.
또 하나, 그의 사상은 당대에 결코 무난하지 않았어요.
정통파 일부는 그를 이단으로 여겨 사후에도 오래 논쟁이 이어졌고, 어떤 이는 그를 '악의 스승'이라 비난한 반면 어떤 이는 '시대의 축'이라 칭송했어요.
같은 사람을 두고 정반대 평가가 나란히 전해질 만큼, 마음의 종교는 뜨거운 주제였답니다.
이븐 아라비의 '마음의 종교 사랑론'은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첫째, 신앙의 진짜 자리는 형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열린 마음이에요.
둘째, 그 마음은 머리로 따지는 앎이 아니라 직접 겪어 '맛보는' 앎, 곧 다우끄로 신을 알아요.
셋째, 세계와 사람은 신이 자신을 보고 알려지려는 사랑에서 나왔기에, 사람이 사랑으로 응답할 때 그 고리가 이어져요.
형식이 다른 신앙들 아래에서 하나의 사랑을 본 그의 시선은, 서로 다른 믿음이 부딪히는 오늘에도 조용한 질문 하나를 남겨요.
나는 무엇을 사랑해서 그것을 믿고 있을까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