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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세수하다가 거울을 들여다본 적 있죠? 거울 속에는 분명 내 얼굴이 있어요.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손을 들면 똑같이 손을 들죠. 그런데 그 얼굴을 손으로 잡을 수 있나요? 없어요. 거울 뒤를 아무리 뒤져도 그런 얼굴은 들어 있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거울 속 얼굴은 아예 없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좀 이상해요. 두 눈으로 분명히 보고 있으니까요.
무지개도 그래요. 저기 떠 있는 게 분명 보이는데, 달려가서 손으로 잡을 수는 없죠. 이렇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자리"를 800년 전에 아주 진지하게 파고든 사람이 있어요. 바로 이븐 아라비예요.
이븐 아라비는 1165년, 지금의 스페인 남부에서 태어났어요. 그때 그곳은 이슬람 사람들이 다스리던 땅이었죠. 그는 젊을 때부터 깊은 명상에 빠져 살았고, 평생 여러 도시를 떠돌며 글을 썼어요. 남긴 책이 수백 권에 이른다고 전해질 만큼 부지런했고, 사람들은 그를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불렀어요. 1240년, 다마스쿠스라는 도시에서 일흔다섯 해의 삶을 마쳤어요.
그는 이슬람 신비주의, 곧 수피즘의 거장이에요. 수피즘은 규칙만 외우는 종교가 아니라 "신을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직접 느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파고드는 길이에요. 이븐 아라비는 그 길에서 두 가지 큰 생각을 남겼어요. 하나는 '바르자흐', 또 하나는 '존재는 하나다'라는 생각이에요.
바르자흐는 원래 "사이에 낀 경계"라는 뜻이에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을 떠올려 보세요. 한쪽은 민물, 한쪽은 짠물인데, 그 둘이 닿는 자리에는 민물도 짠물도 아닌 어중간한 띠가 생기죠. 그 경계가 바로 바르자흐예요. 두 개를 가르면서 동시에 이어 주는 자리인 셈이죠.
이븐 아라비는 이 말을 마음의 세계로 가져왔어요.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건의 세계가 있어요. 또 눈에 안 보이는 생각이나 영혼의 세계도 있죠. 그런데 그 둘 사이에 또 하나의 세계가 끼어 있다는 거예요. 거울 속 얼굴처럼, 꿈속 풍경처럼, 진짜 물건도 아니고 순수한 생각도 아닌 "그 사이의 세계"요. 그는 이곳을 '상상계'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상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냥 머릿속으로 지어낸 거짓말"이 아니에요.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아주 진짜 같은 자리예요.
가장 가까운 예가 꿈이에요. 꿈속에서 우리는 친구도 만나고, 무서운 괴물한테 쫓기기도 하고, 하늘을 훨훨 날기도 해요. 아침에 깨고 나면 "아, 꿈이었네" 하지만, 꿈을 꾸는 동안에는 심장이 쿵쿵 뛸 만큼 생생하죠.
그 괴물은 진짜 몸뚱이가 있었나요?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었나요? 그것도 아니에요. 분명히 무언가를 보고 느꼈으니까요. 이븐 아라비는 바로 이 "몸은 없는데 모습은 또렷한" 자리가 바르자흐라고 했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그림처럼 모양을 갖추고 나타나는 곳이죠. 우리는 매일 밤 잠들 때마다 이 세계로 잠깐 여행을 다녀오는 셈이에요.
이븐 아라비의 또 다른 큰 생각은 '와흐다트 알 우주드', 우리말로 옮기면 "존재는 하나다"라는 거예요. 어렵게 들리지만 비유로 보면 쉬워요.
너른 바다를 떠올려 보세요. 파도가 수도 없이 많지만, 알고 보면 그 파도는 전부 같은 바닷물이에요. 큰 파도, 작은 파도, 자잘한 잔물결까지 모양은 다 달라도 "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이 하나죠. 이븐 아라비는 세상 만물도 이와 같다고 봤어요. 나무도, 별도, 사람도 겉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그 바탕에는 단 하나의 존재(그에게는 신이었죠)가 흐르고 있고, 만물은 그 하나가 여러 모습으로 비쳐 나온 것이라고요.
그러면 바르자흐가 왜 중요한지 또렷해져요. 하나뿐인 그 존재가 우리 눈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통로"가 바로 상상계거든요. 거울이 빛을 받아 얼굴을 비춰 주듯이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하나와 눈에 보이는 여럿, 그 둘을 이어 주는 다리가 바르자흐인 거죠.
이븐 아라비의 생각이 멋진 건, "보이고 만져지는 것만 진짜"라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을 살짝 흔들어 놓기 때문이에요. 꿈이나 상상, 거울 속 모습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나름의 자리와 무게가 있다고 말해 주니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매일 바르자흐를 지나다녀요.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얼굴, 음악을 들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 책을 읽다가 머리에 펼쳐지는 장면. 그건 사진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에요. 그 "사이의 세계"가 800년 전 한 사람의 눈에는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처럼 보였던 거예요.
거울 속 얼굴은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분명 거기 있어요. 이븐 아라비는 이렇게 "있지도 없지도 않은 사이의 세계"를 바르자흐, 곧 상상계라고 불렀어요. 그곳은 꿈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모습을 입고 나타나는 자리이고, 동시에 하나뿐인 존재가 세상 만물로 비쳐 나오는 통로이기도 해요. 다음에 거울을 보거나 꿈에서 막 깨어날 때, "방금 나는 그 사이의 세계를 지나왔구나" 하고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어렵게만 들리던 이 철학이 한결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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