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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가잘리는 신을 아는 길이 책과 논증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겪는 수행에 있다고 결론짓고, 잘나가던 교수 자리를 버린 채 수피 수행자의 삶으로 옮겨 갔어요. 머리로 증명한 진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 앓아 봤기 때문이에요.
알 가잘리는 1058년쯤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태어난 이슬람 학자예요.
법학과 신학, 논리학에 두루 밝아서 젊은 나이에 손꼽히는 학교 교수가 된 사람이지요.
그런 그가 어느 날 모든 걸 내려놓고 '수피즘'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이걸 '수피즘으로의 전향'이라고 불러요.
수피즘은 이슬람의 신비주의 흐름이에요.
쉽게 말하면, 신을 '증명하는 것'보다 '느끼고 만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길이에요.
요리에 비유해 볼게요.
요리책을 100권 외운 사람과, 부엌에서 직접 재료를 썰고 맛을 본 사람 중 누가 진짜로 요리를 아는 걸까요?
가잘리의 전향은 '나는 지금까지 요리책만 외우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아, 직접 부엌에 들어간 사건이에요.
가잘리는 1091년, 서른 남짓 나이에 바그다드의 니자미야 학원 교수가 됐어요.
당대 손꼽히게 명망 높고 도전적인 자리였지요.
셀주크 제국의 실세 재상이 그에게 '종교의 광채' 같은 칭호까지 내려 줬으니, 세속의 성공으로 치면 꼭대기에 올라선 셈이에요.
그런데 1095년, 그는 큰 정신적 위기를 겪어요.
남들 앞에서 신과 진리를 강의하면서도, 정작 자기 마음속에는 확신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데 정작 그 과목을 왜 배우는지 모르는 학생의 마음과 비슷했지요.
결국 그는 병이 날 정도로 괴로워하다가, 메카 순례를 핑계 삼아 바그다드를 떠나요.
가족을 정리하고 재산도 처분한 뒤 가난하고 검소한 삶을 택했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던 자리를 스스로 걷어찬 거예요.
바그다드를 떠난 가잘리는 다마스쿠스의 큰 모스크에서 청소부로 일했어요.
그리고 모스크의 높은 첨탑, 미나렛 안에서 지냈지요.
손꼽히던 교수가 빗자루를 들고 좁은 탑에 몸을 뉘었다는 게 놀랍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이게 진짜 공부였어요.
바로 이 시기에 그는 대표작 《종교 제학의 소생》, 원어로 이흐야 울룸 앗딘(Iḥyā' ʿulūm al-dīn)을 써요.
제목 그대로 '죽어 있던 종교 학문을 다시 살려낸다'는 뜻이에요.
이 책은 예배하는 법, 일상을 사는 법, 파멸로 가는 마음, 구원으로 가는 마음을 두루 다뤄서, 훗날 쿠란과 하디스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낭송되는 이슬람 책으로 꼽혀요.
화려한 강단에서가 아니라, 홀로 낮아진 자리에서 그의 가장 깊은 글이 나온 거예요.
가잘리는 말년에 자서전 《미혹으로부터의 구원》, 원어로 알문키드 민 앗달랄(al-Munqidh min al-Dalal)을 남겨요.
여기서 그는 자기가 걸어온 길을 솔직하게 털어놔요.
신학도 공부했고, 철학도 파고들었고, 다른 종파의 논리까지 익혔지만, 세 길 모두 마음의 갈증을 채워 주지 못했다고 고백하지요.
그러다 그는 마침내 답을 찾았다고 말해요.
자기 위기를 풀어 준 것은 더 똑똑한 논증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가슴에 던진 빛'이었다고요.
오직 수피 수행으로 겪는 신비 체험에서만 진짜 답을 찾았다는 거예요.
자전거를 아무리 글로 배워도 넘어져 봐야 탈 줄 알게 되는 것처럼, 신도 논증이 아니라 몸으로 겪는 수행 속에서 만나야 한다는 결론이었어요.
이것이 그의 전향의 핵심이에요.
가잘리의 전향은 한 사람의 개인적 결심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 뒤, 최초의 정규 수피 교단이 만들어졌고, 이후 여러 수피 교단이 이슬람 세계 곳곳에 퍼졌어요.
왜 이렇게 큰 파장이 생겼을까요?
그전까지 수피즘은 자칫 이단처럼 의심받기 쉬운 변두리 흐름이었어요.
그런데 손꼽히는 학자로 인정받던 가잘리가 자기 온 삶을 걸고 '이 길이 참되다'고 증언하자, 수피즘이 이슬람 안에서 떳떳한 자리를 얻게 된 거예요.
반듯한 모범생이 어떤 길을 진지하게 걸으면 사람들이 그 길을 다시 보게 되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가잘리는 수피즘을 이슬람 신앙의 중심부에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아요.
가잘리의 수피즘으로의 전향은, 신을 아는 방법을 통째로 바꾼 사건이에요.
머리로 증명하는 앎에서, 몸으로 겪는 체험으로요.
그는 바그다드에서 손꼽히던 교수 자리를 버리고 청소부로 낮아졌고, 그 낮은 자리에서 쓴 글과 삶으로 '진리는 논증이 아니라 수행에서 만난다'는 걸 보여 줬어요.
그 개인적 결단이 훗날 수피즘을 이슬람의 당당한 한 길로 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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