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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주돈이가 남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은 우주의 궁극(태극)이 실은 아무 형체도 경계도 없다(무극)는 뜻이에요. 정해진 모양이 없기에 오히려 모든 것을 낳는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이죠.
주돈이(周敦頤, 1017년부터 1073년까지)는 북송의 유학자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어 성리학의 우주론적 기초를 놓은 사람이에요.
그 책의 맨 첫 문장이 딱 다섯 글자예요.
"無極而太極(무극이태극)."
그대로 옮기면 "무극이면서 태극이다"예요.
여기서 태극(太極)은 '가장 큰 끝', 곧 세상 만물이 갈라져 나온 궁극의 뿌리를 가리켜요.
그런데 주돈이는 그 앞에 무극(無極), '끝이 없음'을 붙였어요.
궁극의 끝인데 끝이 없다니, 여기서 벌써 머리가 갸웃해지죠.
이 짧은 한 문장이 바로 우리가 오늘 풀어 볼 역설이에요.
물을 한번 떠올려 볼게요.
물은 자기만의 정해진 모양이 없어요.
그래서 컵에 담으면 컵 모양, 병에 담으면 병 모양, 강에 흐르면 강 모양이 되죠.
만약 물이 처음부터 네모난 얼음 덩어리였다면 컵에도 병에도 다 들어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정해진 모양이 없음'이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의 비결인 셈이에요.
주돈이가 말한 무극도 이와 비슷해요.
우주의 근원이 만약 특정한 모양, 특정한 색, 특정한 크기를 가진 '어떤 것'이었다면, 그건 그냥 세상 속 수많은 물건 중 하나일 뿐이지 모든 것을 낳는 뿌리는 못 돼요.
진짜 뿌리라면 자기 자신은 어떤 물건도 아니어야 하죠.
그래서 '끝이 없다(무극)'고 한 거예요.
끝이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끝이 없기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하얀 도화지를 떠올려도 좋아요.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라야 배도, 산도, 얼굴도 그릴 수 있잖아요.
이미 무언가 잔뜩 그려진 종이엔 새 그림을 담기 어렵죠.
무극은 이 '아직 아무 모양도 정해지지 않은 바탕'에 가까워요.
그 텅 빈 바탕이 곧 만물이 나올 궁극의 자리, 태극인 거예요.
많은 분이 처음엔 이렇게 오해해요.
"무극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태극이 생긴 건가?"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요.
하지만 주돈이의 문장을 '무극이면서 태극'으로 읽으면, 둘은 순서가 있는 다른 물건이 아니라 같은 하나를 두 방향에서 본 거예요.
| 부를 때 | 무극(無極) | 태극(太極) |
|---|---|---|
| 글자 뜻 | 끝이 없음 | 가장 큰 끝 |
| 강조하는 면 | 형체도 경계도 없다 | 만물의 궁극 근원이다 |
| 가리키는 대상 | 같은 하나 | 같은 하나 |
같은 사람을 '키 큰 사람'이라고도 부르고 '안경 쓴 사람'이라고도 부를 수 있듯이, 우주의 근원 하나를 '형체 없음'이라는 면에서는 무극, '만물의 뿌리'라는 면에서는 태극이라 부른 거예요.
그러니 역설처럼 서로 부딪혀 보이지만, 실은 한 몸의 앞뒤인 셈이죠.
무극이라는 말이 태극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태극이 어떤 물건이 아님을 다시 한번 짚어 주는 말인 거예요.
이 짧은 문장은 훗날 큰 논쟁의 씨앗이 됐어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 1130년부터 1200년까지)와, 마음을 앞세운 육상산(陸象山, 육구연)이 바로 이 '무극이태극' 다섯 글자를 놓고 정면으로 맞붙었거든요.
두 사람이 각자의 사상을 통째로 걸고 대립한 대표적인 장면이에요.
주희는 무극이라는 말을 아주 반겼어요.
태극만 말하면 사람들이 그걸 하늘 어딘가에 있는 커다란 물건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앞에 무극을 붙이면 "그건 형체 있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아 준다는 거죠.
실제로 주희는 주돈이를 송대 최초의 큰 성인으로 꼽으면서, 특히 무극을 강조한 점을 높이 샀다고 전해져요.
반면 육상산 쪽은 미심쩍어했어요.
태극이면 그것으로 충분한데 굳이 무극을 더 얹으면, 근원 위에 또 근원을 포개는 군더더기가 아니냐는 거예요.
게다가 '무(無)'를 앞세우는 말투가 도가(노장) 냄새가 난다는 의심도 있었어요.
실제로 태극을 그린 그림인 태극도(太極圖)가 도교 계통에서 흘러왔다는 주장도 후대에 나왔으니, 이 의심이 아주 근거 없는 건 아니었죠.
물론 이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갈리는 논쟁이에요.
주돈이의 '무극이태극'은 어려운 말장난이 아니라, 세상의 근원을 어떻게 그려야 하느냐는 진지한 대답이에요.
물이 정해진 모양이 없어 어떤 그릇에나 담기듯, 우주의 궁극(태극)도 정해진 형체가 없기에(무극) 만물을 낳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 한 줄만 기억하면 돼요.
무극과 태극은 순서를 둔 두 물건이 아니라 같은 하나의 두 얼굴이고요.
그리고 이 다섯 글자가 훗날 주희와 육상산의 큰 논쟁으로 이어졌다는 것까지 알아 두면, 짧은 문장 하나가 왜 성리학의 출발점으로 불리는지 감이 잡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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