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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부유하는 인간 논증은 공중에 떠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을 상상하는 실험이에요. 눈·귀·피부의 감각을 전부 꺼도 "내가 있다"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으니, 나를 나로 아는 마음은 몸이나 감각과는 다른 것이라는 뜻이에요.
이븐 시나(라틴명 아비센나, 980년경부터 1037년까지)는 『의학전범』으로 동서양 의학을 잇고 철학에서도 큰 자취를 남긴 학자예요.
그가 남긴 유명한 생각 실험 하나가 바로 '부유하는 인간 논증(al-Insān al-Ṭā'ir)'이에요.
핵심은 뜻밖에 간단해요.
감각을 하나도 못 쓰는 사람조차 "내가 있다"는 것만은 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를 나로 느끼는 그 무엇, 곧 영혼은 몸이나 감각과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이죠.
아래에서 이 상상을 한 걸음씩 따라가 볼게요.
이 실험은 편안한 서재가 아니라 감옥에서 나왔어요.
이븐 시나는 카쿠이조 군주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하마단 근처 파르다잔 요새에 넉 달 동안 갇혔는데, 바로 그 옥중에서 '떠 있는 사람' 사고실험을 써 내려갔어요.
갇힌 사람은 보통 벽과 쇠창살부터 떠올리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이븐 시나는 반대로 물었어요.
"그 벽도, 내 몸조차도 못 느끼는 상태라면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밖에서 오는 감각을 다 빼앗겨도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의 진짜 뿌리라고 본 거죠.
눈을 감고 저와 함께 상상해 봐요.
방금 다 자란 어른으로 태어난 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공중에 붕 떠 있어요.
손발이 서로 닿지 않게 팔다리를 활짝 벌린 채로요.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소리가 없고, 피부에는 바람도 온도도 닿지 않아요.
심지어 자기 몸이 어디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해요.
이렇게 모든 감각을 꺼 버려도, 그 사람은 딱 하나를 알아요.
바로 "내가 있다"는 것이에요.
| 실험에서 꺼 버린 것 | 그래도 남는 것 |
|---|---|
| 눈으로 보는 것 | "내가 있다"는 앎 |
| 귀로 듣는 소리 | 나를 나로 느끼는 자아 |
| 피부로 느끼는 감촉 | 스스로를 향한 확신 |
| 내 몸이 있다는 감각 | 의심할 수 없는 '나' |
감각이라는 창문을 전부 닫아도 방 안에 등불 하나가 켜져 있는 셈이에요.
그 등불이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마음이에요.
결론은 이래요.
몸이 있다는 감각이 하나도 없는데도 "나는 있다"를 안다면, 그 '나'는 몸과 같은 것일 수 없어요.
만약 나와 몸이 똑같은 것이라면, 몸을 못 느끼는 순간 '나'도 함께 사라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사라지지 않았죠.
그래서 이븐 시나는 영혼이 신체와는 독립된, 물질이 아닌 실체라고 논증하려 했어요.
눈·귀·피부라는 감각 기관이 다 멈춰도 자기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점이 그 증거였던 거예요.
몸은 도구이고, 그 도구를 놓쳐도 남는 '나'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죠.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이 실험을 흔히 '떠 있는 사람(Floating Man)'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원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오히려 '추락하는 사람(falling man)'에 가깝다고 해요.
통용되는 번역과 원래 말맛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셈이죠.
떠 있든 떨어지든, 실험이 그리는 그림은 같아요.
공중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요.
그러니 이름의 차이에 너무 매이지 말고, "감각을 다 지워도 남는 나"라는 핵심만 붙잡으면 충분해요.
부유하는 인간 논증은 감각을 전부 차단한 사람을 상상하는 생각 실험이에요.
눈·귀·피부를 다 껐는데도 "내가 있다"는 앎은 지워지지 않죠.
이븐 시나는 여기서 영혼이 몸과는 다른, 물질이 아닌 무언가라는 결론을 끌어냈어요.
감옥에서 태어난 이 상상은, 우리가 자신을 아는 마음이 감각 이전에 이미 켜져 있다는 점을 조용히 보여 줘요.
이름이 '떠 있는'이든 '추락하는'이든, 기억할 것은 하나예요.
감각을 다 지워도 나는 남는다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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