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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필연적 존재란 다른 무엇 때문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있을 수밖에 없어서, 있고 없고를 따질 필요조차 없는 단 하나의 존재예요. 이븐 시나는 세상 만물이 이 하나에 기대어 존재한다고 봤어요.
책상 위에 놓인 컵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 컵은 지금 여기 있지만, 없었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누군가 만들었으니까 있는 거죠.
사실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이래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데, 무언가가 있게 만들어 줘서 겨우 있는 거예요.
11세기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이븐 시나(약 980년부터 1037년까지 살았어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만 잔뜩 있어서는 세상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그는 '필연적 존재', 아랍어로 와집 알우주드(Wājib al-Wujūd)를 이야기해요.
다른 무엇 덕분이 아니라 오직 그 자체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이 존재는 '왜 있지?'라는 질문 자체가 필요 없어요.
없는 상태를 아예 떠올릴 수 없으니까요.
이븐 시나는 어떤 것이 '있는' 방식을 딱 세 가지로 나눴어요.
이걸 알면 필연적 존재가 왜 특별한지 한눈에 보여요.
| 있는 방식 | 뜻 | 예 |
|---|---|---|
| 불가능 | 있을 수가 없음 | 네모난 동그라미 |
| 가능(우연) |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됨 | 나, 컵, 산, 별 |
| 필연 | 없을 수가 없음 | 필연적 존재 |
대부분의 것들은 가운뎃줄에 들어가요.
이걸 '가능한 존재'라고 불러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으니, 실제로 있으려면 반드시 밖에서 누가 존재를 '켜 줘야' 해요.
스위치를 눌러야 불이 켜지는 전등처럼요.
이븐 시나는 이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을 동력인(efficient cause)이라고 불렀어요.
무언가가 본질에 존재를 얹어 줘야 비로소 있게 된다는 거죠.
여기서 이븐 시나의 핵심 논증이 나와요.
그는 이 논증을 '진실한 자들의 증명', 아랍어로 부르한 알시디킨(burhān al-ṣiddīqīn)이라고 불렀어요.
철학사가 피터 아담슨은 이걸 중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 존재 증명 가운데 하나이자 이븐 시나 최대의 기여로 꼽아요.
생각해 보세요.
가능한 존재는 스스로 켜지지 못하니 옆의 무언가가 켜 줘야 해요.
그런데 그 옆의 것도 가능한 존재라면, 또 그 옆이 켜 줘야 하죠.
도미노처럼 원인이 원인을 물고 늘어져요.
그런데 이렇게 '빌려온 존재'만 무한히 이어지면, 아무리 줄을 세워도 정작 맨 처음 불을 켠 것이 없어요.
콘센트에 꽂히지 않은 멀티탭을 아무리 길게 연결해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이 줄 어딘가에는 누구에게도 존재를 빌리지 않은, 스스로 켜져 있는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필연적 존재고, 이븐 시나는 이것을 신이라고 봤어요.
이븐 시나는 필연을 다시 둘로 쪼개서 헷갈림을 막았어요.
이 구분이 꽤 중요해요.
| 종류 | 아랍어 | 뜻 |
|---|---|---|
| 그 자체로 필연 | 와집 알우주드 비다티히(bi-dhatihi) | 스스로 있어야만 함 |
| 남에 의해 필연 | 와집 알우주드 비가이리히(bi-ghayrihi) |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있게 됨 |
예를 들어 볼게요.
불을 붙이면 종이는 '반드시' 타요.
이때 종이가 타는 건 필연이긴 한데, 불이라는 원인이 있어서 생긴 필연이에요.
원인을 치우면 사라지죠.
이런 게 '남에 의한 필연'이에요.
반면 그 자체로 필연인 존재는 어떤 원인도 없이, 조건도 없이 그냥 있어요.
오직 이 '그 자체로 필연'인 존재만이 진짜 뿌리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기서 존재를 빌려 쓰는 셈이에요.
참고로 이 논의의 밑바탕에는 본질(마히야māhiya)과 존재(우주드wujūd)를 나누는 이븐 시나 특유의 구분이 깔려 있는데, 그건 따로 다룰 이야기라 여기선 살짝만 짚고 넘어갈게요.
이 생각이 모두를 설득한 건 아니에요.
신학자 알가잘리 같은 사람은 이븐 시나의 형이상학적 신학을 두고 신앙에서 벗어난 위험한 논리라고 강하게 비판했어요.
신을 이렇게 철학의 사슬 맨 끝자리에 놓아도 되느냐는 거였죠.
그래서 이슬람 지성사 안에서 이븐 시나 철학의 정통성 여부는 오랫동안 논쟁거리로 남았어요.
어느 한쪽이 완전히 이겼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바로 그 팽팽함이 이 개념을 더 오래 살아남게 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이븐 시나의 필연적 존재(와집 알우주드)는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세상 것들은 대부분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빌려온 존재'라서, 누군가 존재를 켜 줘야만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빌리기만 하면 첫 원인이 없어 아무것도 켜지지 않죠.
그래서 스스로 있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븐 시나는 그것을 신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그 하나만이 '그 자체로 필연'이며, 나머지는 모두 그 하나 덕분에 필연이 된다는 거예요.
컵 하나에서 시작한 물음이 세상의 뿌리까지 닿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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