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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샹카라는 내가 우주의 근원과 본래 하나인데 '무명'이라는 착각이 그 사실을 가려서 나를 외롭고 고통스러운 개별 존재로 오해하게 만든다고 봤어요. 그 착각을 앎으로 걷어내는 순간 모든 고뇌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해탈이에요.
샹카라는 8세기 무렵 인도에서 활동한 철학 교사예요.
그가 평생 파고든 질문은 딱 하나로 줄일 수 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애쓰며 살다가 죽고, 또 태어나 같은 고통을 반복할까?"
그의 대답이 바로 무명(無明)이에요.
무명은 '밝지 못함', 곧 잘못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해요.
자료에 따르면 샹카라는 나라는 개별 자아(개아)가 사실은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최고아)과 본래 하나인데, 무명 때문에 내가 세상과 뚝 떨어진 별개의 '나'인 줄 착각한다고 봤어요.
문제는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내가 잘못 보고 있다는 데 있는 거예요.
어두운 방에서 스위치를 못 찾아 벽을 더듬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방 구조는 원래 그대로인데, 불이 꺼져 있으니 자꾸 부딪히고 넘어져요.
무명은 바로 그 '불 꺼진 상태'예요.
없던 벽이 생긴 게 아니라, 밝지 못해서 아플 뿐이죠.
무명이 그냥 잠깐의 착각으로 끝난다면 다행일 텐데, 샹카라는 이게 훨씬 무겁다고 봤어요.
자료에 따르면 무명은 순수한 앎(순수지)을 현혹시켜서 윤회의 원인이 된다고 해요.
즉 '나는 이 몸, 이 이름, 이 처지'라는 착각이 욕심과 두려움을 낳고, 그 감정이 행동을 낳고, 그 행동의 결과가 다시 다음 삶으로 이어져요.
착각 하나가 끝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가 되는 셈이에요.
영화관을 생각하면 쉬워요.
스크린 속 주인공이 위험에 빠지면 우리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도 나요.
화면 속 일이 '내 일'인 것처럼 느끼는 동안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죠.
샹카라가 본 우리 삶도 비슷해요.
몸과 처지를 나 자신으로 붙들고 있는 한, 그 이야기의 기쁨과 슬픔에 계속 끌려다니게 돼요.
그 붙듦이 바로 무명이에요.
해탈(解脫)은 이 모든 고뇌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말해요.
자료에 따르면 개아가 최고아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면 해탈, 곧 일체 고뇌의 소멸에 이른다고 해요.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점이 있어요.
해탈은 무언가를 새로 얻거나 먼 곳으로 떠나는 게 아니에요.
이미 그러한데 몰랐던 사실을 아는 것, 그게 전부예요.
지갑을 잃어버린 줄 알고 온 집을 뒤졌는데 사실 처음부터 내 주머니에 있었다고 해 봐요.
지갑을 새로 사는 게 아니라, '거기 있었구나' 하고 아는 순간 찾기가 끝나요.
샹카라의 해탈도 그래요.
나와 브라만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나를 묶던 착각이 힘을 잃어요.
불을 켜면 뱀인 줄 알았던 게 밧줄이었음이 드러나듯, 두려워할 대상 자체가 사라지는 거예요.
샹카라 사상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어요.
그는 우파니샤드의 위대한 말, 곧 마하바키야를 '듣는 순간' 바른 지식이 생겨난다고 강조했어요.
오랜 명상이나 수행을 따로 쌓지 않아도,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그 자리에서 앎이 성립한다고 본 거예요.
그 위대한 말이 바로 이런 문장들이에요.
तत्त्वमसि (tat tvam asi), '그것이 너다'라는 뜻이에요.
अहं ब्रह्मास्मि (aham brahmāsmi),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뜻이고요.
짧지만 무명을 정면으로 깨는 말이에요.
'너는 그 우주의 근원과 동떨어진 작은 존재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해 주니까요.
왜 앎 하나로 충분할까요?
애초에 문제가 '잘못 앎'이었기 때문이에요.
병의 원인이 오해라면 약도 바른 앎이어야 맞죠.
방이 어두워서 넘어졌다면 필요한 건 근육 운동이 아니라 스위치를 켜는 일인 것처럼요.
무명에 묶인 상태와 해탈한 상태를 나란히 보면 이래요.
| 구분 | 무명 (묶임) | 해탈 (풀림) |
|---|---|---|
| 나를 보는 눈 | 몸·처지와 떨어진 개별 자아로 착각 | 브라만과 본래 하나임을 앎 |
| 삶의 결과 | 욕심과 두려움, 윤회의 반복 | 일체 고뇌의 소멸 |
| 벗어나는 길 | (착각이라 벗어날 수 없음) | 바른 앎, 위대한 말을 알아들음 |
샹카라에게 무명은 세상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잘못 아는 착각이었어요.
그 착각이 나를 외롭고 두려운 개별 존재로 느끼게 하고, 그 느낌이 욕심과 행동을 낳아 윤회를 굴려요.
그래서 해탈은 힘겹게 어딘가로 가서 얻는 상이 아니라, 나와 우주의 근원이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착각이 스르르 풀리는 일이에요.
불을 켜면 부딪힐 벽이 사라지듯, 무명이 걷히면 두려워할 것도 함께 사라져요.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샹카라의 무명과 해탈을 붙든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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