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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마야(māyā)는 우리가 보는 이 다채로운 세상이 아예 없는 거짓이 아니라, 하나뿐인 참된 실재 위에 덧씌워져 진짜처럼 보이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겉모습'이라는 뜻이에요. 영화가 스크린 위에서 진짜처럼 펼쳐지지만 만져 보면 빛일 뿐인 것과 비슷해요.
인도 철학자 샹카라는 8세기 무렵, 그러니까 대략 700년에서 750년 사이에 살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에요.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을 '마야(māyā)', 곧 환영이라고 불렀어요.
환영이라니까 "세상이 다 가짜야,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처럼 들리기 쉬워요.
그런데 샹카라가 말한 마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세상은 분명 우리 눈앞에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밥 먹고 학교 가고 아프기도 하죠.
마야는 그 모든 걸 없던 일로 지우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그 세상이 '가장 밑바닥의 진짜'는 아니라는 거예요.
진짜 위에 잠깐 떠 있는 겉모습, 그게 마야예요.
그래서 마야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없다'와 '겉모습이다'를 구별하는 데 있어요.
비 온 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떠올려 볼까요.
무지개는 분명 보여요.
사진도 찍히고, 예쁘다고 다 같이 감탄도 하죠.
그런데 무지개가 걸린 그 자리로 달려가 손을 뻗으면 잡히는 게 없어요.
무지개는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벽돌처럼 단단히 있는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어요.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이 보는 신기루도 마찬가지예요.
저 멀리 물이 반짝이는 게 똑똑히 보이지만, 다가가면 물은 없고 모래만 있죠.
샹카라가 본 세상이 딱 이래요.
우리 눈에는 수많은 것들이 저마다 따로따로 있는 것처럼 보여요.
나무 하나, 강아지 하나, 나 하나, 너 하나.
하지만 샹카라는 이 '따로따로 나뉜 여럿'이야말로 마야가 만든 겉그림이라고 봤어요.
밑바닥의 진짜는 나뉘지 않은 하나인데, 마야라는 얇은 막이 그 하나를 여러 개로 보이게 흩어 놓는다는 거죠.
여기서 오해를 하나 꼭 풀어야 해요.
마야는 "세상은 없다"가 아니라 "세상은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는 아니다"에 훨씬 가까워요.
극장에서 무서운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도 나요.
그 순간 화면 속 이야기는 우리에게 완전히 진짜예요.
그런데 불이 켜지면 스크린엔 아무 괴물도 없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엔 진짜처럼 힘을 갖지만, 사실은 빛과 그림자였던 거예요.
꿈도 그래요.
꿈속에서 쫓기면 진짜로 무섭고 진짜로 도망치지만, 깨고 나면 방 안엔 아무 일도 없어요.
마야도 이렇게 '겪는 동안엔 진짜, 알고 보면 겉모습'인 이중적인 성질을 가져요.
그래서 옛 인도에서는 샹카라의 이 가르침을 '마야바다(māyāvāda)', 곧 마야에 관한 이론이라고 불렀어요.
마야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은 우리가 흔히 겪는 '평범한 착각'과 나란히 놓고 견줘 보는 거예요.
| 평범한 착각 | 마야 | |
|---|---|---|
| 예 | 어두운 방에서 옷걸이를 귀신으로 봄 | 하나인 실재를 여럿인 세상으로 봄 |
| 언제 풀리나 | 불을 켜면 바로 | 참된 앎이 생기면 |
| 무엇이 남나 | 옷걸이라는 진짜 | 하나라는 진짜 |
어두운 방에서 옷걸이를 귀신으로 잘못 보다가도, 불을 탁 켜면 착각은 바로 풀려요.
마야도 이 점이 비슷해요.
다만 마야를 걷어 내는 '불'은 전등이 아니라, 겉모습 아래 나뉘지 않은 진짜를 알아보는 앎이에요.
그리고 중요한 게 있어요.
착각이 풀려도 옷걸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듯, 마야가 걷혀도 진짜는 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더 또렷해지죠.
사라지는 건 '여럿으로 나뉘어 보이던 겉그림'뿐이에요.
마야 이야기는 1300년 전 옛 생각이지만, 묘하게 오늘과 닿아 있어요.
우리는 화면 속 세상을 진짜라 믿고 울고 웃고, 남과 나를 자꾸 갈라 재면서 살잖아요.
샹카라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그 나뉜 그림에 너무 사로잡히지 마라. 그건 마야가 그린 겉모습일 수 있다."
세상을 버리고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게 전부라고 덜컥 믿지는 말라는 조용한 권유에 가까워요.
마야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 위에 떠 있는, 진짜 같은 겉모습'이에요.
무지개처럼 분명 보이지만 손엔 잡히지 않고, 영화나 꿈처럼 겪는 동안엔 생생하지만 알고 보면 빛이자 그림자죠.
샹카라는 여럿으로 나뉘어 보이는 이 세상이 바로 그런 마야이며, 밑바닥의 진짜는 나뉘지 않은 하나라고 봤어요.
착각이 불빛에 풀리듯 마야는 참된 앎이 생길 때 걷히고, 그때에도 진짜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 —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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