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샹카라는 내 속 깊은 곳의 참된 나, 곧 '아트만'과 온 세상 만물의 뿌리인 '브라흐만'이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하나라고 봤어요. 둘이 따로 있어 보이는 건, 우리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뿐이에요.
먼저 샹카라가 누구인지 딱 한 문장만 깔고 갈게요.
지금부터 대략 1300년 전, 서기 8세기 무렵(학계에서는 700년에서 750년경으로 봐요) 인도에 살았던 철학자예요.
그가 평생 되풀이해 강조한 말은 이거예요.
"네 안의 참된 나는, 사실 온 세상의 근원과 똑같은 하나다."
여기서 두 낱말만 알면 돼요.
'아트만(ātman)'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짜 나예요.
오늘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고, 어제와 오늘 생각이 바뀌어도 '그 모든 걸 지켜보는 나'는 그대로 있죠?
그 변하지 않는 나가 아트만이에요.
'브라흐만(brahman)'은 세상 모든 것을 있게 한 궁극의 바탕이에요.
샹카라는 이 둘이 결국 같은 것이라고 못을 박았어요.
작은 내 안의 나와 온 우주의 뿌리가, 놀랍게도 하나라는 거예요.
말로만 들으면 어려우니 물로 바꿔 볼게요.
컵에 담긴 물 한 컵이 있어요.
이 물은 '컵 안의 물'이라는 자기만의 이름과 모양을 가진 것 같지만, 바다에서 퍼 온 물이라면 성분은 바닷물과 똑같아요.
컵이라는 테두리 때문에 잠깐 따로 있어 보일 뿐이죠.
컵을 깨서 바다에 부으면, 그 물은 원래부터 바다였던 것처럼 하나가 돼요.
샹카라에게 나(아트만)는 컵 속 물이고, 브라흐만은 바다예요.
'나'라는 몸과 이름, 성격이라는 컵이 나를 세상과 따로 떼어 놓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본래 재료는 처음부터 같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나와 우주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에 가까워요.
이 미묘한 차이가 샹카라 사상의 핵심이에요.
샹카라는 이 진실을 자기가 새로 만든 게 아니라고 했어요.
인도의 오래된 경전 우파니샤드에 이미 들어 있던 문장들을 가리켰죠.
그중 특히 중요한 네 문장을 '위대한 말씀', 곧 마하바키야라고 불러요.
| 원문 | 읽는 법 | 뜻 |
|---|---|---|
| तत्त्वमसि | 타트 트밤 아시 | 그것이 너다 |
| अहं ब्रह्मास्मि | 아함 브라흐마스미 | 나는 브라흐만이다 |
| प्रज्ञानं ब्रह्म | 프라즈냐남 브라흐마 | 순수한 앎이 브라흐만이다 |
| अयमात्मा ब्रह्म | 아얌 아트마 브라흐마 | 이 아트만이 브라흐만이다 |
네 문장이 모두 같은 말을 해요.
네 안의 나와 세상의 근원이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샹카라가 특별했던 건, 이 문장을 제대로 '듣는 순간' 바른 앎이 곧바로 생겨난다고 본 점이에요.
무슨 대단한 수련을 오래 쌓아야만 깨닫는 게 아니라, 뜻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 자리에서 진실이 열린다고요.
그럼 이렇게 물을 수 있어요.
"둘이 원래 하나라면서 왜 나는 전혀 하나로 안 느껴지죠?"
샹카라의 대답은 간단해요.
우리가 아직 그 사실을 '몰라서'예요.
마치 어두운 방에서 벽에 걸린 밧줄을 뱀으로 착각해 놀라는 것과 비슷해요.
밧줄이 뱀으로 바뀐 게 아니라, 어두워서 잘못 본 것뿐이죠.
불을 켜면 처음부터 밧줄이었다는 걸 알게 돼요.
마찬가지로 참된 나는 처음부터 브라흐만이었는데, 우리는 '나는 이 몸이야, 이 이름이야, 저 사람과 완전히 다른 존재야'라고 착각하며 살아요.
이 착각이 걷히면 나눠져 보이던 세상이 실은 하나였음을 알게 된다고 샹카라는 봤어요.
샹카라가 말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이야기는 이렇게 기억하면 돼요.
첫째, 아트만은 내 안의 참된 나, 브라흐만은 온 세상의 근원이에요.
둘째, 이 둘은 컵 속 물과 바다처럼 본래 같은 하나이고, 새로 합쳐지는 게 아니라 원래 하나였음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셋째, 우파니샤드의 '타트 트밤 아시(그것이 너다)' 같은 문장이 그 진실을 전하고, 제대로 들으면 그 자리에서 앎이 열린다고 샹카라는 봤어요.
작은 나와 온 우주가 이름만 다른 하나라는 이 생각이, 그가 인도 철학에 남긴 가장 큰 울림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