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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불이일원론은 '둘이 아니다(아드바이타, advaita)'라는 뜻으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나뉘지 않은 하나뿐이고 세상이 여럿으로 갈라져 보이는 건 겉모습이라는 가르침이에요. 샹카라는 이 생각을 혼자 지어낸 게 아니라 앞서 흩어져 있던 사상을 하나로 묶어 단단한 체계로 세운 사람이에요.
먼저 이름부터 풀어 볼게요.
'불이일원론'은 산스크리트 '아드바이타(advaita)'를 한자로 옮긴 말이에요.
앞의 '아(a)'는 '아니다', 뒤의 '드바이타(dvaita)'는 '둘'을 뜻해요.
그러니까 합치면 '둘이 아니다', 곧 '나뉜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 돼요.
여기에 '오직 하나만 참되다'는 뜻으로 '일원론(一元論)'을 덧붙인 거예요.
그럼 무엇이 '둘이 아니다'라는 걸까요?
핵심은 이거예요.
우리 눈에는 나, 너, 산, 강, 별처럼 세상이 수없이 많은 것들로 갈라져 있는 것 같지만, 정말로 존재하는 실재는 나뉘지 않은 하나라는 거예요.
여러 개로 보이는 건 겉모습일 뿐이고, 그 바탕은 단 하나라는 이야기죠.
샹카라는 8세기(대략 700년에서 750년경) 인도에서 활동한 베다 학승이자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교사였는데, 이 '하나' 사상을 가장 짜임새 있게 정리한 인물로 꼽혀요.
비유로 가 볼게요.
여기 커다란 진흙 덩어리가 하나 있어요.
이걸로 항아리도 빚고, 컵도 빚고, 접시도 빚어요.
다 만들고 나면 우리는 '항아리', '컵', '접시'라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고 다른 물건으로 대해요.
그런데 잘 보면 이 셋은 전부 같은 진흙 하나로 되어 있어요.
모양과 이름은 여럿이어도, 그 재료라는 바탕은 나뉘지 않은 하나인 거죠.
불이일원론이 세상을 보는 눈이 딱 이래요.
이름과 모양은 수없이 많아도 그 밑바탕은 하나라는 거예요.
그릇이 깨지면 이름은 사라져도 진흙은 그대로 남듯이, 겉모습은 왔다 가도 참된 바탕은 늘 그 자리에 있고요.
그래서 '둘로 나뉜 세계'가 아니라 '나뉘지 않은 하나'가 진짜라고 보는 겁니다.
이 하나를 인도 철학에서는 어떤 한정도 붙지 않는 절대적 실재라는 뜻에서 브라만이라고 부르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다룰게요.
재미있는 건, 이 '하나' 사상이 샹카라가 처음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일본 학자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는 샹카라를 독창적 사상가라기보다 이전부터 있던 아드바이타 사상을 종합하고 체계화한 사람으로 봤어요.
실제로 순다라판댜라는 인물이 샹카라보다 앞서 이미 비슷한 가르침을 폈고, 샹카라는 자기 주석서에서 그 말을 인용하기까지 했어요.
그럼 샹카라의 몫은 뭐였을까요?
흩어진 우파니샤드 구절과 논리를 하나의 튼튼한 학설로 엮은 거예요.
그는 우파니샤드의 짧은 핵심 문장(마하바키야)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는데, 예를 들면 तत्त्वमसि(tat tvam asi, '그것이 너다')나 अहं ब्रह्मास्मि(aham brahmāsmi, '나는 브라만이다') 같은 말이에요.
샹카라는 이런 문장을 '제대로 듣는 순간' 바른 앎이 생겨난다고 봤어요.
따로 오랜 명상을 거치지 않아도, 나뉘지 않은 하나라는 진실을 알아차리는 그 자체가 곧 깨달음이라는 거죠.
샹카라 당대에 반대파들은 그를 '위장한 불교도(프라찬나 바우다)'라고 몰아붙였어요.
비시슈타드바이타를 세운 라마누자가 대표적이었죠.
실제로 그의 논법이 대승불교의 비판 방식과 닮은 구석이 있긴 해요.
하지만 이 딱지를 그대로 믿으면 곡해가 돼요.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거든요.
불교 일부 갈래는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가 없다고(무아) 보는데, 샹카라의 불이일원론은 정반대로 나뉘지 않은 참된 하나가 분명히 있다고 봐요.
그래서 아드바이타 전통은 이 '위장한 불교도'라는 규정을 명확히 거부해요.
아래 표로 정리해 볼게요.
| 물음 | 샹카라 불이일원론 | '위장한 불교도'라는 비난 |
|---|---|---|
| 참된 실재가 있나 | 나뉘지 않은 하나가 있다 | 없다고 본 불교와 같다고 몰아붙임 |
| 근거로 삼은 글 | 베다·우파니샤드 | 대승불교와 논법이 닮았다는 점 |
| 전통의 입장 | 명백히 다르다며 거부 | 논쟁적 딱지일 뿐 |
불이일원론은 이름과 모양은 여럿이어도 참된 바탕은 나뉘지 않은 하나뿐이라는 가르침이에요.
'아드바이타'가 곧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고요.
진흙 하나로 여러 그릇을 빚어도 재료는 하나이듯, 세상의 온갖 여럿은 겉모습이고 실재는 하나라고 본 거죠.
샹카라는 이 생각을 새로 발명한 게 아니라 흩어진 사상을 하나의 체계로 묶었고, 짧은 핵심 문장을 제대로 듣는 순간 앎이 생긴다고 강조했어요.
불교와 닮았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참된 하나가 있다고 본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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